사설

‘킬러 문항’ 사태, 교육과 수사는 분리 접근해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금까지 나온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한 사항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출제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당국과 사교육업체 간 ‘카르텔’(유착)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통해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고, 공교육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고3 교실은 물론이고 일선 교육 현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사교육업체들은 달라질 수능에 대비해야 한다며 ‘준킬러 문항’ 설명회를 열며 이 사태를 돈벌이 기회로 삼고 있다. 그 설명회마다 불안한 수험생·학부모들이 몰리고 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간 카르텔은 기본적으로 수사 사안이다. 수사의 밀행성 등을 고려하면 교육부 장관에게도 알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반면 킬러 문항 제외는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맡겨 시간을 갖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한 점 흠결 없이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지난 15일 대통령 업무보고 후 이 부총리는 곧장 ‘쉬운 수능’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고, 대통령실은 4시간 만에 부인하며 ‘카르텔’을 강조해 혼란을 키웠다.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의 어떤 문제가 학교교육 과정을 벗어났는지 설명도 없이 교육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평가원장을 쫓아냈다. 일의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고, 모든 책임은 실무자에게 전가됐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체계를 유지하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면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고교학점제 안착의 선결 조건으로 꼽혔던 내신 절대평가는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사교육을 잡겠다며 대통령까지 나서 ‘좌측 깜박이’를 켜놓고, 중등교육 정책은 ‘우회전’한 셈이니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논란 큰 교육정책이던 ‘고교 서열화·일제고사·성적 공개’로 회귀하면, 교육 경쟁은 심해지고 사교육이 번성하는 건 자명하다. ‘카르텔’의 한 축인 교육 당국의 수장인 이 부총리가 “2주간 사교육 부조리 집중신고를 받는다”며 수사 주체로 행세하는 것도 당혹스럽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대입에 올핸 ‘물수능’ 변수까지 더해졌다. 수능이 5개월도 안 남았는데 평가원은 감사받고, 평가원장은 공석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시민은 없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업체 간 카르텔이 존재한다면, 근절하고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배가 산으로 가고, 백년대계는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당장 9월 모의평가와 수능 출제진을 확보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이다. 윤 대통령은 수사와 교육 사안을 분리해서 접근하고, 이날 졸속으로 발표한 공교육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교육 문외한인 윤 대통령의 과잉 참견과 이 부총리의 무능·무소신·무책임이 불러온 교육 참사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이제라도 전문가들 얘기를 경청해야 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