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맛대로 OECD 보고서 인용해 실업급여 깎으려는 정부

정부가 실업급여 하한선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개편을 예고하며 그 근거로 드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9월 한국경제조사보고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OECD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기여기금 대비 실업급여가 가장 높고 취업해서 받는 수익보다 실업급여가 많다고 했다”면서 “반복 수급 또는 형식적 구직 활동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보고서 가운데 정부 입맛에 맛는 대목만 발췌해 인용한 것이다.

한국의 실업급여가 비과세라 근로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보고서가 지적한 것은 맞다. 그러나 보고서의 큰 주제는 ‘불완전한 사회안전망’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고질적인 소득불평등과 빈곤에 일조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지 않았다는 점,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보장수준도 “실업급여 하한액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열거했다. OECD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보험 가입 및 비정규직 노동자 훈련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20~270일인 수급기간을 국제기준인 1~2년으로 늘리고 상한액을 높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보고서의 내용은 ‘시럽급여’ 운운하며 실업급여를 깎으려는 정부·여당의 주장과 정반대다.

게다가 한국노동연구원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임시·일용직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고, 30세 미만이면 6.9%로 더 떨어진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짧거나 자발적 이직일 경우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가 실업급여 관련제보를 분석한 결과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려운 처지다. 고용주가 자진 퇴사를 강요하거나, 자발적 퇴사로 신고하는 ‘갑질’도 횡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시럽급여’ 선동에 장단을 맞췄다면 노동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정부가 실업급여 체계를 손질하려 한다면, OECD 권고대로 실업급여 보장범위를 넓히고 수급기간과 상한액도 확대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마땅하다. 정부 입맛에 맞는 팩트만 취사선택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우리 사회가 힘겹게 일궈온 사회안전망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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