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5개월을 앞두고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 배제라는 매우 이례적인 출제 지침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수능 출제자들이 사교육업체 배를 불리기 위해 학교 수업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면서 카르텔 의혹을 제기하고,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했다. 경찰·국세청 등은 수능 출제진과 학원계를 상대로 대대적인 사정 작업을 벌였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출제검토단’을 만들어 수능 대비에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조치에도 올해 수능이 매우 어렵게 출제돼 혼선이 커지고 있으니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수험생 설문·가채점 결과를 보면 “어려웠다”는 답이 90%에 육박하고, 교사들도 이번 수능이 ‘불수능’이라 불린 2022학년도 수준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킬러 문항의 개념과 기준도 여전히 애매하다. 수학 22번 문제는 정답을 맞힌 수험생이 1.5%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당국은 단 한 개의 킬러 문항도 출제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킬러 문항 배제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난도의 예측 가능성과 수능의 안정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 발표와 어긋나는 수능 난도에 수험생·학부모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고, 시험이 어려울수록 n수생이 강세를 보이는 경향 등을 감안하면 올해 고3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능에서 국어·수학의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격차가 통합수능 시행 후 3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질 기류인 점도 걱정이다. 수험생 가채점 결과, 국어에서 화법과작문을 선택한 학생의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은 141점, 언어와매체는 147점으로 6점 차이가 났다.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은 확률과통계 140점, 미적분 147점, 기하 142점으로 격차가 최대 7점이다. 탐구영역에선 과목 따라 표준점수 최고점 격차가 14점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1~2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점수 차이가 발생하는 건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다.
수능 후 학원가는 벌써부터 ‘준킬러 문항’ 설명회를 열며 입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사교육은 단순히 킬러 문항 유무 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지침으로부터 시작된 수능 혼란이 커지고, 그 불안이 수험생·학부모들을 다시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