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려는 정부와 국민의힘의 움직임에 동조할 모양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의 준비 소홀에 대한 공식 사과, 산업안전을 위한 구체적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유예기간 이후 전면 적용 등 “세 가지 조건을 바탕으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조건부일 뿐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데 함께하겠다는 것 아닌가. 총선이 다가오자 민주당이 원칙보다는 표계산에 빠진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한 법으로, 5~49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준비기간을 감안해 적용이 유예됐다. 내년 1월 확대 적용을 앞두고 재계의 반대의견이 거세지자 국민의힘이 의원발의로 2년 추가 유예 개정안을 내놨고, 윤석열 대통령도 ‘민생 현장의 요구’라며 적용 유예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 ‘민생’이 노동자의 민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숨지는 노동자는 매년 1300명대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60%에 달한다. 사업주들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도 규정돼 있는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갖추지 않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침해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있는 법도 제대로 안 지켜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계는 중대재해법을 확대 시행하면 사업주 형사처벌로 기업은 폐업하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반발한다. 다분히 과장이자 엄살이다. 실상은 어떤가. 노동자 16명에게 화학물질 상해를 입혀 중대재해법 ‘1호 기소’가 된 기업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초범이라는 이유로 최저형량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게 관행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 안전관리를 개선하고 재해를 예방하자는 법의 뜻과도 거리가 멀다.
확대 시행이 임박한 마당에 준비가 부족하다며 유예하겠다는 당정도 무책임하고, 문재인 정부 당시 유예기간을 둔 책임이 있는 민주당의 사과 요구도 뜬금없다. 2년 더 유예한다고 준비가 더 나아질 상황도 아니다. 중대재해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헌법재판소에서 이달 초 기각됐고, 노동부 조사에서도 50인 미만 사업장 80%가 법 준수가 가능하거나 준비 중이라고 응답했다. 산재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애써 세운 중대재해법이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의 당리당략으로 무력화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