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과침공·지방소멸·사교육 키우는 불수능, 이대로 갈 건가

명문대 입학이 출세의 도구가 되는 한 입시에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학교 교육이나 교육방송(EBS) 교재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난도를 낮추면 사교육은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이례적으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 배제 방침을 밝히고 학원계와 수능 출제진을 상대로 사정 작업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2024학년도 수능이 매우 어렵게 출제되면서 정부 정책 불신과 수험생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 입시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국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점, 수학은 148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6점, 3점씩 올랐다. 시험이 어려울수록 표준점수 최고점은 상승한다.

과목 선택의 유불리를 최대한 없애겠다는 출제 당국 발표와 달리 국어·수학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격차도 최대로 벌어졌다. 특히 수학에서는 원점수가 같은 만점이어도 미적분을 선택한 수험생은 확률과통계를 응시한 수험생보다 11점이 높은 표준점수를 받았다. 이과 수험생이 인문·사회계열에 지원하는 이른바 ‘문과침공’ 현상이 올해도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올 수능 출제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충분한 변별력을 갖췄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해도 부족할 판에 되레 자화자찬이다. 이번 수능의 난도나 킬러 문항 유무에 관해 윤 대통령이 과연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지방 간 교육 격차가 수능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11학년도 수능과 2023학년도 수능 성적 분석 자료를 보면, 10여년 새 서울을 제외한 전국 모든 시도 수험생의 성적이 하락했다. 수능이 사교육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 학생들에게 유리한 시험이라는 뜻이다. 수능 n수생 문제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수능에 응시한 졸업생은 15만7000여명으로 전체 3분의 1을 차지한다. n수생이 늘면 고3 재학생이 대입에서 불리해지고, 재학생이 이듬해 n수생이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수능이 도입된 지 올해로 30년이다. 대통령이 지시해도 난이도 조절이 안 되고, 공정성 시비와 교육 양극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 수능을 원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1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4 대입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1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4 대입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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