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쿠팡 ‘노동자 블랙리스트’ 의혹, 정부 즉시 근로감독하라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쿠팡이 채용 배제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일용·계약직 노동자 1만6450명을 6년 넘게 관리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침해하고 근로기준법 등을 위반한 범죄에 해당한다.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쿠팡은 2017년 9월 이후 물류센터를 거쳐 간 노동자 1만6450명의 이름과 연락처, 업무용 ID 등 개인정보가 담긴 ‘PNG 리스트’를 만들었다. 대책위가 공개한 리스트에는 노동자들의 개인정보 외에 ‘사유 1’과 ‘사유 2’를 적는 칸이 있고, ‘대구 1센터’와 ‘대구 2센터’ 등의 표식을 달았다. 옆에는 ‘정상적 업무수행 불가’ ‘고의적 업무 방해’ ‘허위사실 유포’ ‘폭언·욕설 및 모욕’ ‘비자발적 계약종료’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대책위는 ‘대구 1센터’는 영구적 채용 배제, ‘대구 2센터’는 6개월 이내 채용 배제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리스트에는 노조원 20명과, 쿠팡을 취재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인 71명도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자 블랙리스트 작성·운용은 불법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정해진 범위를 넘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쿠팡은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책위가 공개한 자료는 쿠팡이 아니면 작성이 불가능하다. 퇴직자 이름 옆에 ‘정상적 업무수행 불가’라고 적어놓은 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면 무엇인가. 쿠팡이 블랙리스트 존재를 의도적으로 흘리며 노동자들을 통제했다는 주장도 있다. 리스트에 오른 탓에 채용에서 탈락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2년 전에는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가 노동자 블랙리스트 작성·운용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등장한 노동자 탄압 수법이 21세기 대명천지에 첨단 전자상거래 업종에서 활용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노동부는 쿠팡에 즉각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필요하면 강제 수사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쿠팡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를 멈추고 노동자들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 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