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세사기 피해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날린 서민들에게는 삶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사기범 ‘건축왕 남씨 사건’ 피해자는 1년 전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 하소연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와 여당의 피해 구제책은 사각지대가 많고 여전히 유명무실하다.
정부와 여야는 전세사기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자 지난해 5월 우선매수권 부여, 경·공매 유예, 매입 임대 제공, 금융·법률지원 등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지금껏 전세사기 피해 신청자 1만3384명 중 2440명(18.2%)은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다수 임차인이 피해를 입어야 하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떼먹을 의도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피해자로 인정돼도 은행 등에서 긴급 저리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특별법 시행 9개월이 지났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주택 활용을 위해 매입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은 1건에 그쳤다. 경매 대신 채권자와 직접 협의해 주택을 사들인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대책이 빛 좋은 개살구였던 셈이다.
전세사기는 이제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되면서 전세를 회피하는 수요가 월세로 몰리고 임대료를 밀어올리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 원룸 등 소형 오피스텔·빌라의 월세가 100만원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그대로 사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70%에 달하지만, 집주인은 잠적하고 관리가 되지 않아 단전·누수·악취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돼 있다.
전세사기 피해 극복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강둑이 터졌으면 일단 둑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발 빠른 감세·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 피해 구제엔 왜 그리 인색한가. 다행히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 임차인을 우선 구제해주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의 특별법 개정안은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저축은행 부실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채권을 정리했던 전례도 있다. 정부·여당은 “선례가 없고 다른 사기 피해와 형평에 어긋난다”며 반대만 하지 말고 야당과 협력해 특별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처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