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과거사 해법 없는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공허한 독백’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3.1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3.1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제105주년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모든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와 억압 통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남북 간 적대성과 군사적 긴장이 치솟는 와중에 ‘흡수통일론’을 공식화한 걸로 해석될 만한 발언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통일’을 언급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헌법에서 통일 표현을 지우겠다고 선포한 데 대한 대응일 것이다. 문제는 방향이다. 윤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을 보편적 가치의 대척점에 세우고 통일을 보편적 가치의 확장으로 매김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주의적 철학, 자유의 가치가 누락돼 있다”며 1994년 수립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하겠다고 했다. 흡수통일론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못박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한민국 헌법 66조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평화의 관점이다. 있었다면 군사적 충돌·응징을 전제한 힘에 의한 평화론일 뿐, 이번 3·1절에도 대화 제의조차 없다. 분단국인 한국에 평화는 당위가 아니라 생존 문제다. 당장 남북간 군사적 긴장 고조와 봄 연합군사훈련을 앞두고 접경지 주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국내 외환시장은 악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를 타개할 방안은 한 줄도 제시하지 않고, 이번에도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과는 적대적으로 등지고 대화의 문을 닫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역사가 남긴 어려운 과제들을 풀어나간다면 한·일 관계의 더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노골화된 독도영유권 도발,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에서 비롯된 민감한 갈등 현안이 여럿이지만 ‘과거사는 덮고 가자’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정치의 흐름을 꿰뚫어 보며 세계 각국에서 외교독립운동에 나선 선각자들도 있었다”면서 “이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큐 영화 ‘건국전쟁’과 이승만기념관 추진을 계기로 시작된 보수 진영의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 움직임에 힘을 실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모든 독립운동을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은 ‘반쪽’에 그쳐 있다. 지난해 보수진영에서도 반론이 제기된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 어떤 사과나 복구 조치도 없는 게 대표적이다. 독립운동조차 이념적으로 편가르기한 윤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자유주의’ 실현의 역사로 규정했다. 대북 적대 정책, 대일 유화 정책, 이승만 전 대통령 옹호 배경에 이런 역사관이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의미가 큰 3·1절에 구체적 평화·대화 제의 같은 반전·출구 없이 ‘윤석열표 국정’의 관성만 또렷했다. 이념형 대통령의 공허한 독백과도 같은 기념사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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