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철회로 ‘법치’ 증명하라

이종섭 호주대사가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종섭 호주대사가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법무부가 8일 ‘해병대 채상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 사건 피의자인 이종섭 호주대사에 대한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수사방해, 해외 도피’ 비판 여론에도 이 대사의 ‘호주행’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다만 지난 4일 대사 임명부터 이날 출국까지 나흘만에 일사천리로 밀고 가려던 계획은 일단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 피의자가 아니라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규명할 핵심고리인 만큼 그의 무리한 출국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따가웠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대사 기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옳다.

법무부는 이날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대사의) 이의신청이 이유 있다”며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최근 이 대사가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석조사를 받았고, 향후 수사에 적극 협조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1월 출국금지 이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6일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진 다음날 전격적인 4시간의 약식조사가 해제 명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주요 사건의 핵심 피의자를 4시간 조사로 끝낸 것은 석연치 않다. 압수물 분석과 주변인 조사 등이 모두 이뤄지 않은 상황에서 단시간의 약식조사로 수사가 마무리될리 만무하다. 일련의 과정이 ‘속전속결 출국’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 아니냐는 의심을 키운다. 대행의 대행의 대행체제인 공수처가 이같은 면죄부 수사를 할 수는 없다. 사건의 파장을 감안하면 그 책임을 감당키 어렵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의 이 대사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하지만, 이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사 검증도 출금도 모두 법무부가 관여한다. 공수처는 몰라도 법무부에만 확인해도 될 일이다. 몰랐다면 그 또한 심각하다. 매우 기초적 검증임을 감안하면 부실검증을 넘어 사실상 검증 과정을 생략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살 수 있다.

결국 모든 의혹은 대통령실로 향한다. 이 대사가 호주로 떠나게 되면 외압 의혹의 ‘진실 규명’은 타격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대사가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지만, 소환이 필요할 때마다 귀국할 가능성은 낮다. 일단 부임하면 추가 대면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향후 특검법이 통과돼 특검 수사가 시작된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대사의 호주행으로 당장의 의혹은 덮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그리고 이후에도 진실 규명에 발목이 잡힐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 대사 임명을 철회하고 충실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국정의 발목을 잡히지 않는 길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으로서 ‘법치’ 수호 의지를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선택적 법치, 내로남불 법치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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