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선 대통령 된 ‘차르 푸틴’, 혼돈의 다극 질서 대비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끝난 대선에서 87%의 압도적 득표율로 5선에 성공했다. 2000년 첫 임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이로써 2030년까지 최소 30년간 권좌에 있게 됐다.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 이후 최장 기간 집권하는 러시아 지도자가 됐다. ‘차르(군주)’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이번 선거는 1991년 도입된 러시아의 다당제 민주주의가 완전히 형해화되고, 러시아가 명백한 권위주의 국가로 후퇴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득표율 87%가 많은 걸 시사한다. 가장 높았던 2018년 대선 푸틴 득표율보다 10% 높은 수치다. 그것은 경쟁의 시늉이라도 냈던 앞선 선거들과 달리 유의미한 야당 정치인들의 입후보를 막은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출마한 3명 후보는 모두 푸틴의 정책을 추종하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합병한 도네츠크 지역에서는 총을 든 군인들의 감시하에 투표가 이뤄졌고, 95%가 푸틴에게 투표했다. 투표 기간 시민들의 항의 목소리가 표출되기는 했지만,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시즘에 가까운 사태 전개는 푸틴과 러시아인들이 선택한 결과인 만큼 기본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다. 다만 탈냉전 이후 승리감에 도취돼 협력·상생의 신세계 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고 러시아를 몰아붙이기만 한 미국 등 서방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당장 세계에 드리울 암운이다.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인들의 바람대로 끝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유럽과 러시아 간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미국은 ‘트럼프 현상’에서 보듯, 예전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 주도의 단극 질서가 중국·러시아까지 포함한 다극 질서로 재편되는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한국도 이러한 혼란에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하되,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협력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가치 외교 같은 이념에 매달리기보다 국익 우선 외교를 펴는 것이 필요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지난 17일 밤 모스크바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운동본부를 찾아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TASS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지난 17일 밤 모스크바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운동본부를 찾아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TASS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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