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동원 판결 수용 못한다’는 일본에 한마디도 못한 정부

일본 정부가 16일 발간한 2024년 외교청서에서 또다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을 명령한 판결들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는 항의했지만, 한국 사법부 판결을 정면 부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한·일관계를 ‘파트너’로 표현한 점을 들어 “한국 관련 기술이 일부 개선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일본을 방문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일본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면제해준 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 반 잔을 우리가 채우고, 남은 반 잔은 일본이 채우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은 반 잔 물이 채워지기는커녕 있던 물까지 말라버릴 지경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에도 일본은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 한국 기업 등이 마련한 재원은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대법원이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에서도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렸는데, 일본은 그때마다 항의했다. 그렇다고 일본이 독도 관련 주장을 조절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와 정부 문서 등에서 독도 영유권 목소리를 더 높였다.

윤 대통령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명시한 2018년 대법원 판결과 이미 문제가 해결됐다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모순을 조화시켰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사법부는 그 후로도 계속 2018년 판례에 근거해 배상 판결을 내렸고, 제3자 변제를 위한 공탁금도 수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와 한국 사법부 사이에서 일본 편만 들고 있다. 일본과 한 약속이 자국 사법부 판결과 피해자들의 의사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전반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미국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데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9년 전 아베 신조 총리의 불완전한 과거사 반성에 박근혜 정부가 강력한 유감을 표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의 이런 입장 때문에 일본은 패전 이후 역사상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지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미바에 다이스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16일 한국 정부의 초치를 받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이준헌 기자

미바에 다이스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16일 한국 정부의 초치를 받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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