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정책이 실종된 캠프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후보의 정책을 가다듬고 선거운동을 기획, 홍보, 소통 등 다양한 일들을 치러내는 캠프가 필요하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캠프에 줄잡아 500여명의 대학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하니 좋은 사람이 넘쳐날 것이고 심도 있는 정책을 준비해 놓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책선거와 거리가 멀다. 과거회귀형 선거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신 인식, 정수장학회 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등 과거사가 정치공방의 주인인 가운데 정작 대통령이 되면 써야 할 정책과 비전은 뒷전이다.

그나마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복지라는 3대 쟁점에 대해서도 3인의 후보 사이에 뚜렷한 정책적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의제를 선점하는 데 경쟁을 벌였으나 막상 구체적인 정책공방은 실종상태다. 정치개혁을 한다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선거제도, 정당제도, 국회제도, 권력구조는 어떻게 개편하고자 하는지, 재벌개혁과 일자리 창출, 복지비용, 반값 등록금 간의 선순환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각 후보 웹사이트를 유심히 살펴보아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정동칼럼]외교정책이 실종된 캠프

외교정책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대북 신뢰정책,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 평화구상, 안철수 후보는 평화와 공동번영의 선순환론을 내걸면서 모두 포용정책을 강조하고 있어 후보 간 정책 차이를 알기 어렵다. 더 궁금한 것은 대북정책을 넘는 외교 대전략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나라 밖의 변화에 깊이 연계되어 있다. 안보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대외의존적 경제체질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의 변화나 국력 배분구조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고 취약하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취임 후 먼저 마주할 사안은 정치개혁, 경제개혁, 복지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국제문제일 것이다. 그것 또한 북한문제가 아니라 동맹, 영토·해양문제, 통상교섭 등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문제가 집무실 책상에 올라올 것이다.

5년 전 이명박 후보는 ‘7·4·7’ ‘대운하’ 등 공약을 전면에 내걸고 경제성장에 올인하였던 반면 외교안보 분야의 학습은 상당히 부족했다. 항상 그렇듯 우리 외교는 북한문제를 푸는 것이라는 약소국 외교적 사고를 탈피하지 못했다. 외교 대전략을 갖지 못한 속에서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미 FTA의 연내 비준을 위해 쇠고기협상의 무리수를 두다가 촛불정국을 맞아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외교 대전략 차원에서 한·미 FTA의 가치를 면밀히 평가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돌이켜 보면 한·미 FTA의 동맹효과나 경제효과는 과장되어 있었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쇠고기협상을 했다 해도 공화당 정부 말기여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의 비준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보 시절 ‘비핵·개방·3000’이란 비현실적 대북정책 학습만으로 험난한 국제정치의 파고를 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될 대선 후보는 한국이 마주할 다양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일일이 암기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2010년대 한국외교에 대한 전체적 비전만은 갖고 가야 한다. 한국외교의 전략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를 추구함에 있어서 필요한 강령을 숙지하는 일이다. 경쟁적인 미·중관계 속에서 한·미, 한·중관계를 병행 발전시키고, 북한문제를 푸는 한반도 거버넌스를 설계하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고, 동아시아 해양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지향하며, 균형성장을 위한 통상정책을 추진하고, 지구적 차원의 경제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하는 등 외교정책의 방향타를 잡아가야 한다. 이럴 때 외교일선이 노를 제대로 저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정책대결이 중요하지 않은 험한 정치판에서 성장해왔거나 전혀 다른 분야에서 넘어 왔기에 거시적 수준의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지 못하다. 500여명의 캠프 전문가는 후보에게 외교비전, 전략개념, 주요 강령을 제공하여 5년 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후보는 정책학습이 득표수단이 아니라 대통령직 수행의 핵심기반임을 인식하고 이들을 잘 가려 활용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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