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정치는 국민소득 통계의 노예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인기가 국민소득 수치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수장의 능력이 임기 중의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뿐이다. 더구나 정부가 발표하는 국민소득과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독일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우리의 70%에 불과하며, 뉴질랜드 국민은 미세먼지를 우리의 20%만 마시며 산다는 사실은 국민소득 통계에서 무시된다. 또한 국민총소득을 인구로 나누어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은 소득분배가 변하는 경제에서 일반 국민의 생활 수준을 대표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 하위 50% 성인이 국민총소득의 20%를 가져갔으나 최근에는 13%밖에 못 가져 가고 있다. 그래서 성인 인구의 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60%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 50% 성인의 평균 소득은 정체 상태에 있다.

[정동칼럼]3만달러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공기의 질을 고려하면 중국의 국민소득은 몇% 낮게 잡아야 할까? 획기적 방안이 나올 때까지 한계를 인식하면서 국민소득이나 국내총생산 통계를 신중하게 사용하며 사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기본적 유의사항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참 유행했던 “국내총생산은 3%도 증가하지 않는데 정부 지출은 매년 7%씩 증가해”와 같은 기사가 그중 하나다. 앞의 3%는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성장률이고 뒤의 7%는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은 명목성장률이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물가상승률을 빼지 않은 국내총생산 증가율(2015~2017년의 경우 약 5%)과 정부 지출 증가율을 비교해야 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을 써야 할 경우에 국내총생산을 쓰는 경우도 있다. 국내총생산은 단기적 경기 흐름을 측정하는 데 유용하지만 장기적 경제의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1인당 국내총생산을 사용하여야 한다. 경제성장의 목적은 국민의 평균 생활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성장률보다 못한 한국의 성장률”이란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 세계 인구 증가율이 한국보다 거의 1%포인트 높기 때문에 1인당 국내총생산 성장률로 따졌을 때 세계 성장률이 한국의 성장률을 초과한 적은 외환위기 이후 없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경제 해설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80달러였으나 작년에 3만달러를 돌파하여 거의 400배 증가했다.” 정말 우리는 400배나 부자가 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다른 나라 물가처럼 미국 물가도 증가하고 다른 나라 화폐처럼 달러 가치도 하락한다. 소비자물가로 따졌을 때 1960년 1달러의 가치는 현재의 거의 10배에 달한다. 따라서 실질 가치로 따졌을 때 우리의 소득은 40배쯤 증가했다. 이런 식의 경제보고서도 있다. “미국은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섰고, 많은 서유럽 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에 3만달러를 달성했다. 따라서 한국은 약 15~20년 늦게 선진국 클럽인 3만달러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럼 작년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 미국의 1996년 수준에 도달한 것인가? 역시 아니다. 그동안 달러 물가가 상승했으니 1996년의 3만달러는 구매력으로 따질 때 2018년의 4만7000달러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 아직 우리는 미국의 1996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달러 국민소득은 원화로 계산한 국민소득을 시장 환율로 나눠 계산한 수치에 불과하다. 환율이 춤추면 달러 국민소득도 춤춘다. 더구나 개발도상국 물가는 선진국 물가보다 싸다. 중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시장 환율로 계산할 때 9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중국 물가가 미국의 거의 절반이기에 미국인의 1만7000달러와 맞먹는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여러 국가의 소득을 비교할 때 반드시 국가 간 물가 차이를 감안한 구매력평가 소득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구매력으로 따졌을 때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7년에 이미 3만달러를 넘어섰고, 현재 미국의 65%에 이른다.

왜 우리는 그렇게 달러로 따진 소득에 연연해하는 것일까? 달러 원조로 전쟁에서 살아남고, 달러를 벌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수출을 했던 후진국의 국민이어서 고무줄 잣대인 달러를 불변의 가치척도로 신봉하게 된 것일까? 언젠가 미국처럼 풍요롭게 사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면 실질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을 미국보다 높게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된다. 이제 3만달러니 5만달러니 하는 허상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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