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지 않은 신화

이승철 | 논설위원

북한의 로켓 시험 발사 이후 갖가지 분석과 향후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가 있을 때마다 대부분 약방의 감초처럼 되풀이되는 내용들이다. 흥미있는 것은 이념적 성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의 분석이 두 가지 점에서 항상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경향의 눈]검증되지 않은 신화

하나는 북한의 이번 행위로 동북아 질서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비록 위성을 궤도에 올리지 못했지만 장거리 미사일 기술에 많은 진전을 과시한 만큼 동북아 안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실시함에 따라 동북아 질서에 잠재적 불안요인이 늘어난 것은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번 행위가 동북아의 안보 질서를 흔들 정도로 위력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동북아 질서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동북아 질서에 지진이 일어나기 위해선 경제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일본과 같은 나라가 대량살상능력을 갖추는지 여부가 절대적 변수다. 여기에 한국과 대만도 포함된다. 하지만 미국이 이들 나라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도 이를 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좋은 대학=행복 보장’이 그릇된 신화라면 북한의 로켓 발사를 동북아 질서 변화와 직결시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화다.

동북아 안정 위협 호들갑 잘못

또 다른 분석은 북한의 대미 협상력 강화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 의도를 북한 내부의 결속과 함께 대미 협상력 제고 카드라고 읽고 있다. 북한이 3기 체제 출범을 앞두고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심각한 건강상 문제점을 노정했다는 점에서 내부 결속 문제는 북한에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북한 정권이 과거와 달리 사전에 국제해사기구(IMO)에 로켓 발사 계획을 통보한 데 이어 북한 언론들이 신속히 김 위원장의 발사 참관 사실을 보도한 것을 보면 로켓 발사에 체제 결속 목적이 있음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로켓 발사를 대미 협상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이 추구해오던 양자 직접 대화 의사를 전달한 상태다. 여기에다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는 지난달 방북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미국과의 조속한 대화가 필요한 북한이 굳이 장애물을 만들어 협상력을 제고하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북한이 위성 발사를 수 시간 앞두고 미국에 사전 통보한 것은 협상력 강화보다는 향후 협상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물론 북한의 로켓 발사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반응에 따라 협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8년 텅빈 ‘금창리 동굴’에 대해 핵저장 시설 의혹을 제기해 스스로 북한의 협상력 제고에 도움을 준 전례가 있다. 로켓 발사가 얼마나 북한의 협상력 강화에 도움이 될지는 순전히 미국에 달린 셈이다.

북한의 위성 발사가 이미 일어난 일이 됨에 따라 다음 수순은 협상이다.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한·미·일은 제재, 중·러는 우려, 그리고 북한은 안보리 논의 자체를 선전포고로 보겠다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향후 협상을 의식한 것이다.

정부, 北로켓에 냉정대처 필요

문제는 이런 검증되지 않은 신화들이 자칫 상황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 로켓 발사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일 경우 진짜 동북아 안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일본의 호들갑을 불안하게 느끼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로켓 발사를 대미협상으로 해석해 과잉 대응한다면 협상 자체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모두 다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다. 정부가 검증되지 않은 신화보다는 로켓 발사의 파장과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우리가 남북관계에 대해 큰 그림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승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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