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두꺼비가 되는 사람들

김택근 논설위원

비 내리는 청주,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수만, 아니 수십만, 아니 수백만 마리의 두꺼비가 청주 원흥이 방죽을 떠나 구룡산으로 이동을 했다. 도랑을 넘어 논둑을 지나 산기슭으로 향했다. 청주에 사는 김하돈 시인은 비를 맞으며 이를 지켜보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유혈목이(유일하게 두꺼비 독에도 멀쩡한)가 나타나 닥치는 대로 새끼들을 삼켰다. 삶 옆에 죽음이 있는 법, 더러의 삶을 위해 더러는 죽어야 했다. 죽음과 삶이 서로를 부르는 생명체의 장엄한 축제였다.

[경향의 눈]봄이면 두꺼비가 되는 사람들

그러나 최대의 두꺼비 산란지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왔다. 청주시 산남동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일대는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청주 시민들은 두꺼비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인간의 새집은 짓되 두꺼비의 헌집은 보존해 달라고 애원했다. 청주시와 한국토지공사가 이를 외면하자 시민단체들의 구호도 거칠어졌다. 시민대책위가 꾸려졌다. 누구는 베어 넘어질 나무를 부둥켜안고 전동 톱날 앞에서 울부짖었다. 굴착기 앞에 드러눕고, 원흥이 방죽을 시민들이 에워싸기도 했다. 인간 띠잇기, 삼보일배, 도청앞 농성, 국정감사 사절단 요구 등이 이어졌다. 충북지역 40여개 시민단체 등으로 ‘원흥이생명평화회의’가 결성되었고, 소속 활동가들은 최후 수단으로 단식을 했다.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면서 양측의 결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원흥이 방죽’ 지켜낸 청주 시민들

두꺼비를 대신하여 활동가들은 싸웠다. 21개월 동안 모든 지혜와 힘을 동원했다. 안해 본 것이 없었다. 시민들의 지지는 뜨거웠다. 하지만 개발과 보존의 싸움에서는 아직도 부수는 쪽이 우세했다. 2004년 11월 서로의 양보안을 다시 섞어 ‘원흥이두꺼비생태공원’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원흥이 방죽을 그대로 두고, 200m쯤 떨어진 구룡산 기슭까지 폭 26~56m의 두꺼비 통행로를 내고, 습지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었다. 두꺼비들은 짝짓기를 하러 산에서 내려오고 새끼들은 어미가 내려온 길로 다시 산을 올랐다. 그러니 두꺼비 통행로는 종족 보존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었다.

아파트와 빌딩 가운데 두꺼비의 서식지가 마련되었다. 두꺼비 생태통로를 만들어놓고 두꺼비를 기다렸다.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데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두꺼비가 돌아왔다. 물론 많은 두꺼비가 길을 잃거나 로드킬로 죽어갔다. 그런데도 2006년 260마리에 이어 2007년에는 350마리가 생태통로를 타고 물속 고향, 원흥이 방죽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감격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170마리로 줄더니 올해는 겨우 50마리만이 돌아왔다.

활동가들은 긴장하여 생태공원을 살폈다. 많은 두꺼비들이 산으로 가지 않고 공원 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음을 발견했다. 구룡산 산자락이 잘려나가 삶의 터를 잃어버린 두꺼비들이 생태공원에서 사철을 보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두꺼비들이 산란을 하고 그 속에서 건강한 새끼들이 나온다면 두꺼비 생태공원에 비로소 두꺼비가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5월에 태어나는 새끼들이 건강해야 한다. 일단 조짐은 좋다. 영국에서도 성공한 경우가 있다. 두꺼비에게 미친 많은 사람들이 봄잠을 설치며 새끼 두꺼비를 기다리고 있다.

봄잠 설치며 기다리는 새끼 두꺼비

인간이 자연을 생각하는 초록공간의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원흥이생태공원에 전국 최초의 양서류 생태체험관인 ‘두꺼비생태문화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두꺼비마을신문’을 창간했다. 시민단체와 두꺼비를 구박했던 청주시와 토지공사는 두꺼비를 선전하기에 침이 마른다. ‘청주를 녹색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이와 유사한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문의가 폭주하고 관광객이 급증했다. 외국 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폴 콜먼은 “원흥이 방죽처럼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다”고 극찬했다. 두꺼비를 통해 주민들이 환경에 새롭게 눈을 떴다. 자연을 믿기 시작했다.

원흥이 방죽의 봄은 지금 심각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두꺼비가 되어 눈을 껌벅이고 있다. 두꺼비에게 평화를, 지키는 이들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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