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망령’ 되살아나는가

이이화|역사학자

요즈음 이승만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어느 특정세력들이 이승만의 동상을 광화문 네거리에 세우자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기념관을 짓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광복 66주년을 맞이해서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영할 계획이라 한다. 필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승만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여겼다.

우리의 광복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 35년 만에 나라의 주권을 찾았고 뒤이어 분단구조에서나마 정부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이할 때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질곡과 고통을 반성하고 통일의지를 다지고 민주질서를 유지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기념절이 되어야 한다.

[시론]‘이승만 망령’ 되살아나는가

그런데 이승만은 독립지사요,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초대 대통령이다. 마땅히 기림을 받아야 하겠지만 친일파를 끌어들여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써먹었고 민족운동가를 탄압했으며 온갖 불법으로 절차 민주주의를 왜곡했다. 한국전쟁 시기 무수한 양민을 학살했으며 3·15부정선거의 여파인 4·19혁명을 유발해 시민 학생을 희생시켰다. 이 정도로 열거해도 그는 초대 대통령으로 대우를 받기보다 반민주·반민족 그리고 독재자의 행적을 보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운동이나 정부수립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빚기도 했고 그 방법을 두고 내부 분열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승만은 안전지대에서 외교활동을 벌인다고 표방하면서 한국을 미국에 위임통치하자거나 일본과의 무력투쟁을 방해하거나 공산세력과 대화를 단절하면서 암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그는 감옥에 한 번도 가지 않았고 하와이 노동자들이 마련해준 독립자금을 개인 활동에 펑펑 써댔다. 그래서 위험지역에서 민족운동을 펼치던 신채호는 그를 두고 “이완용과 다름없는 인물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남북분단의 구조 아래에서 민족지도자들을 죽였고 끊임없이 전혀 현실성이 없는 북진통일을 외쳤으며 민족상잔을 중지해야 하는 국제정세에서도 정전회담을 방해해서 극단의 남북 냉전체제를 확립했다. 게다가 일본에 의해 자행된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 잔재청산에는 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 4·19혁명 뒤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가? 그의 유해는 슬그머니 국립묘지의 높은 언덕에 묻혀서 우리 국민을 내려다보고 있다. 신채호는 이곳에 묻히지도 못했으며 신돌석 장군은 초라한 묘역에 작은 돌비만이 보인다.

그러면 지금 이승만 복권운동을 벌이는 저의는 어디에 있겠나? 앞으로 전개될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족분단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을 규합하고 이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국민을 현혹하는 도구로 써먹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일단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을 상징적 인물로 이용할 수 있다. 그 하수인들 곧 친일군인 출신인 백선엽 정일권 박정희 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미지 대중조작은 일시적으로는 약발이 잘 받을 것이다. 앞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기리는 영상물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비쳐지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해 진정한 민족통일이나 민주발전을 모색하거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로 삼기는커녕 엉뚱한 대중조작에 휘말려야 하는 현실의 작태에 서글픔을 가눌 길 없다. 다음 광복절에는 통일조국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진솔한 담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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