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급부상. 201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는 극우 포퓰리즘으로 몸살을 앓았다. 소수자 혐오, 가짜뉴스, 극단적 민족주의가 횡행했다. 파시즘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책이 쏟아졌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지식인 미켈라 무르자가 2018년 출간한 <파시스트 되는 법>은 결이 다른 책이다. 제목만 보면 파시즘 입문서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책 말미에 “파시즘은 충분히 감시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오염시키는 속성을 가졌다”고 했다. <파시스트 되는 법>이란 반어적 표현으로 파시즘의 본질을 폭로했던 것이다. ‘파시즘 대중서’로 각광받은 저자 무르자가 지난 1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들여다보고 경계하려 했던 무르자의 성찰이 한국 사회엔 어디까지 닿았는지 궁금하다.
파시즘은 1919년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확립했고, ‘군국주의적 통제로 통치하는 극우 전체주의적 사상’으로 해석되곤 한다. 정치로 확장하면 국수주의, 권위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파시즘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북한이라는 상수가 존재하는 분단국가라 소수자·약자의 존재가 덜 부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곳곳에서 파시즘적 징후가 감지되면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비판 언론과 시민사회, 노조를 적으로 규정해 혐오를 조장하고, 야당과 전 정권을 가짜뉴스 생산자로 낙인찍어 고립시킨다.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시민권을 약화시키고, 기업과 자본의 자유를 무한정 키워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는 이런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파시스트 되는 법>은 ‘적을 만들어라(비판 세력 탄압), 기억을 다시 써라(가짜뉴스 유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라(차별·배제로 낙인찍기)’로 파시즘을 정의했다. 윤석열 정부의 한국은 파시즘에서 어떤 단계인가. 무풍지대나 소극적으로 대응해도 되는 ‘연성’ 파시즘 단계라며 안도할 상황인가. 자칫 방관하다가는 ‘파시즘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