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를 사랑한 스파이. 그가 없었다면, 본업에만 충실했다면 지금 즐겨 먹는 딸기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712년, 프랑스 육군 중령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에가 칠레 해안가 숲에서 불철주야로 야생 딸기를 찾아 관찰하고 채집했다. 식물학자 행세를 한 그의 정체는 루이 14세가 보낸 스파이였다. 스페인 식민지 칠레의 군사 정보를 정탐하는 게 임무였다. 수첩에 빼곡히 적은 딸기 관련 기록은 군사 암호로 된 현지 정보였다.
그런데 매일 딸기를 보며 지낸 그는 본업 외에 딸기 연구에도 빠져버렸다. 2년 뒤 귀국해 딸기 책을 내고, 칠레에서 가져온 딸기 종자를 프랑스에 심어보기도 했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1700년대 말 육종학자들이 이 칠레 종자와 미국 종을 결합시켜 만든 새 품종이 지금 먹는 재배용 딸기의 원조라고 한다. 1800년대부터 이 딸기가 세계에 퍼졌고 한국에는 1900년대 초에 들어왔다. 산딸기·멍석딸기·뱀딸기 같은 야생 딸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재배용 딸기가 등장한 건 불과 200여년 전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일본 컬링 선수가 “한국산 딸기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고 말하자 일본 농림수산상이 “한국 딸기는 일본 딸기의 이종교배종에 불과하다”고 발끈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설향’을 필두로 국산 품종이 잇따라 개발됐고, 2015년 이후로는 한국 품종 점유율이 90%를 넘어섰다. 이젠 한국산 딸기가 대세다.
하우스 재배로 한겨울 제철 과일이 된 딸기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자 지역 농가에 딸기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이달 초 경남 김해에선 딸기 1900㎏이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값비싼 ‘특상급’만 골라 따간 대담한 도둑의 소행이었다. 최근엔 50대 이웃주민이 딸기 390㎏을 훔친 범인으로 붙잡히기도 했다. 어쩌다 한번, 소량이 아니라 작정하고 대량으로 훔쳐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김해·밀양·강진 등 딸기 농가 지역에서 야간 순찰을 강화하며 대책 마련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과일 서리는 이제 노년들의 추억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그땐 장난이었어도 지금은 범죄다. 서리는 사라지고 범죄가 들어섰다. 농민들이 흘린 피땀을 앗아가는 도둑질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