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검투사 정치’

정제혁 논설위원
제 22대 총선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종로1·2·3·4주민센터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원이 불법 카메라 탐지기로 투표소를 점검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제 22대 총선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종로1·2·3·4주민센터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원이 불법 카메라 탐지기로 투표소를 점검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4·10 총선을 지배하는 정서는 적의와 증오다. 여야는 ‘내가 승리하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고 말하기보다 ‘상대가 승리하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고 악마화하기 바쁘다. 민주주의 정치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토대로 때로 싸우고 때로 협력할 때 작동한다. 그러나 지금 여야에 상대는 제거해야 할 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당 대표에게 야당 대표는 ‘범죄자’ ‘쓰레기’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고, 야당 대표에게 여당 대표는 ‘총선 뒤 수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대화가 없고, 대화가 없으니 타협도 없다. 협치는 언감생심이다. 고질병인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

여야에 이번 총선은 극한의 생존게임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를 수사해 기소했다. 윤석열·한동훈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부를 기소했고, 일부 혐의는 지금도 수사 중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도 여러 죄목으로 대거 기소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이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채 상병·이종섭 쌍특검과 채 상병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조국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모두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위원장을 겨냥한 것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얘기도 나온다. 총선 결과에 따라 여든 야든 단순한 정치적 타격 이상의 후과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당 국회의원이 “문재인 죽여” 같은 극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7일(현지시간) “‘검투사 정치(Gladiator Politics)’가 양극화된 한국의 선거 시즌을 지배하고 있다”며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원한과 복수가 지배하면서 보복을 위한 ‘검투사의 경기장’이 돼버렸다”고 보도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여야의 싸움, 거기에 열광하는 강경 팬덤을 로마시대 검투사의 경기장에 비유한 것이다.

‘검투사의 정치’는 말이 정치이지 기실 정치의 부재증명이나 다름없다. 이번 총선을 끝으로 ‘검투사의 정치’ 대신 대화·타협의 협치와 민생 정치가 오길 바라지만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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