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를 알려준 한국이, 민주투사의 난민 인정을 않다니”

김지혜 기자

중국 민주화 운동가 재중동포 3세 박성수씨

2014년 홍콩 ‘우산혁명’에 참여한 박성수씨(왼쪽)가 홍콩 정부광장에서 홍콩의 민주화 인사 랑궈슝 전 홍콩입법회의 의원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성수씨 제공

2014년 홍콩 ‘우산혁명’에 참여한 박성수씨(왼쪽)가 홍콩 정부광장에서 홍콩의 민주화 인사 랑궈슝 전 홍콩입법회의 의원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성수씨 제공

“한국의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를 배워 오랜 시간 민주화 투쟁에 바쳤는데, 한국이 내게 보여준 것은 난민 불인정 통지서뿐이었다.”

25년간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온 재중동포 3세 박성수씨(46)는 ‘1987의 나라’ ‘민주주의의 선생님’으로 여겼던 한국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가한 잦은 고문과 구금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4년 전 중국을 떠나 한국에 왔다.

23일 만난 박씨는 인터뷰 내내 분노와 한숨을 쏟아냈다. 그는 “말을 잘 못 들어도 이해해 달라”며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연신 미안해했다. “민주화 운동이 남긴 가벼운 장애”라고 했다.

박씨가 중국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건 1993년부터다. 고향인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톈안먼 사태’의 진실을 알리겠다며 전단지 배포에 나섰다가 ‘국가 전복죄’로 구금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중국 민주당에 가입해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에 나서면서부터는 톈안먼 사태가 있었던 6월4일마다 민간 감옥인 ‘흑감옥’에 이유도 없이 투옥됐다고 했다. 박씨는 “감옥에서 심하게 맞은 이후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취업할 때마다 중국 공안경찰이 찾아와 ‘정치적인 문제가 있으니 채용하지 말라’며 고용주를 협박한 탓에 그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도망치듯 랴오닝성으로 이사한 후에도 경찰의 감시는 멈추지 않았다고 박씨는 말했다. 2014년 박씨가 할아버지의 나라이기도 한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것은 “이러다 죽겠다”는 가족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4년여 기다림 끝에 돌아온 것은 ‘난민 불인정’ 통보였다. 지난 19일 법무부는 2016년 10월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한 박씨의 이의 신청을 최종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박씨가 난민협약이 인정하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를 겪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지인을 통해 확인한 중국 공안부 문서에는 ‘박성수 등 민주화 운동자에 대한 감시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며 “그것은 나에게 공포가 아닌 실제적 위협이었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자유와 민주의 나라인 한국이 민주화 투사에 대한 난민 인정을 불허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무 살부터 남몰래 듣던 단파 라디오를 통해 한국의 6월 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됐다는 그는 “한국이 1987년에 그랬듯, 중국에도 ‘민주화의 봄’이 올 것이라 믿었다. 민주공화국인 한국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헛된 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단 법무부는 박씨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 조치를 내린 상태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 생명·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할 만한 사람에게 한국 거주를 허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이 내국인과 비슷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는 것과 달리,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활동 정도만 허가받는다. 박씨는 최근 행정 소송을 통해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박씨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모든 이들을 위해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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