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와 같은 스펙트럼 안에 있는 ‘신경다양인’

박하얀 기자

국내 첫 권익옹호 단체 ‘세바다’

신경다양인 권익옹호 단체 ‘세바다’의 이칼 활동가, 조미정 대표, 이윤진 활동가(왼쪽부터)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신경다양인 권익옹호 단체 ‘세바다’의 이칼 활동가, 조미정 대표, 이윤진 활동가(왼쪽부터)가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진단명·장애등록으로는 한계
‘신체·신경’ 폭넓게 규정해 명명

비장애인 사회서 살기 위해선
자폐 가리는 ‘마스킹’ 강요당해
“신경발달 다양성 인정해야”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고래처럼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사처럼 장애 다양성에 주목해 당사자 권리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국내 첫 신경다양인 권익옹호 단체로 꼽히는 ‘세바다’는 진단 이력 또는 장애인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신경 발달 과정이 ‘전형적’이지 않으면 ‘신경다양인’으로 명명한다. 지난해 10월 비영리단체로 등록한 신생단체로 활동가 20여명, 회원 70명가량이 함께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10명가량이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 채팅방이 단체 결성으로 이어졌다.

조미정 세바다 대표(27·조현형 성격장애인), 이칼(활동명) 활동가(19·자폐 스펙트럼 등록 장애인), 이윤진 활동가(20·자폐 스펙트럼 미등록 장애인)를 지난 7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세바다는 자신의 발달 과정을 돌아보는 ‘당사자’를 신경다양인을 정의하는 주체로 내세운다. 진단명과 장애등록 여부만으로는 당사자들을 오롯이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이윤진씨는 “신경전형인에게도 신경다양인에게 나타날 수 있는 뇌 패턴이 일부 섞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시대가 어떻게 용인하는지에 따라 구분이 달라진다. 큰 스펙트럼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에는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바다 내 장애 미등록인과 등록인의 비율은 8 대 2 정도다. 15년 전 유아기 때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이윤진씨는 치료하는 데 쓴 돈만 “지방에서 집 한 채 살 정도”지만, “(당시 병원에서) 장애인 등록 기준이 얼마나 박하게 돼 있는지 아느냐”고 했다. 조미정씨는 “여성 당사자들은 사회에서 자폐 특성을 숨기도록 더 많이 요구받는 경향이 있는 등 자폐 진단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많다”고 했다.

이윤진씨는 학교 연구실에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임을 밝혔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까칠한 사람이 있으면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귀한 사람 왔다. 환영한다’며 반기는 사람도 있었어요.” 비장애인에게 “맞춰주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이칼 활동가는 스스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부당한 일들에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했다. 장애를 고쳐야 하는 줄만 알았던 조미정씨도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고 남들과 다를 뿐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우영우처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자폐 스펙트럼은 극소수다. 신경다양인들은 이런 소수의 특성을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신경다양인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조미정씨는 ‘창의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단체 행사 기획, 슬로건 발굴 모두 척척 해냈고 호응을 얻었다. 이칼 활동가는 기억력이 뛰어나고 미각이 예민하다. 이윤진씨는 청각·후각이 섬세하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이른바 ‘고인지 자폐인’들은 훈련을 통해 자폐 특성을 가리는 마스킹(masking)을 하기도 한다. 이윤진씨는 “지금 나오는 행동들도 다 마스킹 연습을 한 것”이라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눈을 못 맞췄다. 고치는 게 매우 어려운데, 억지로 집중해서 보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그나마 나아졌다”고 했다.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한다. 조미정씨는 자신이 겪은 학교폭력 경험을 털어놨다. ‘혼잣말하면 무섭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를 한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첫 직장에서는 “일 처리가 느리다”며 해고했다.

이윤진씨는 신경다양인의 사회활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비장애인들도 자신의 다양한 요구나 욕구를 세심하게 채워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무조건 섞여서 평균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빨간 구슬, 파란 구슬인 채로 섞일 수 있는 것처럼요. 그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우영우에게는 ‘봄날의 햇살’ 같은 동료 최수연, 절친 동그라미, 자신의 편견을 깨닫고 인정하는 상사 정명석, 자폐인의 특성을 알아가려는 연인 이준호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애가 더는 ‘장애’로 남지 않는 순간들이 쌓인다. 환경이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것이다. 조미정씨가 말했다. “세바다에서는 누군가 증상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게 가장 중요해요. 직접 경험하도록 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