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가상이 아닌 현실…6070에게도 또 다른 삶 펼쳐질 것”

차준철 논설위원

‘메타버스 전문가’ 김상균 교수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 교수가 지난 7일 경희대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메타버스가 “3차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가상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현실’ ”이라며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 교수가 지난 7일 경희대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교수는 메타버스가 “3차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가상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현실’ ”이라며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973년생.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호기심 많고 게임을 좋아하는 인지과학자다. 메타버스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보틱스(학부)·산업공학(석사)·인지과학(박사)을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게임 개발자로 나서고 스타트업을 두 번 창업하기도 했다. 디지털 기반의 또 하나의 세상인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다. <메타버스>(2020), <게임인류>(2021), <메타버스 Ⅱ>(2022)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기억거래소>(2018), <브레인투어>(2022) 등 메타버스 사회의 모습을 그린 소설도 냈다.

내년 애플과 삼성서 AR 글래스 등 선보이고
기업들도 연계 플랫폼 쏟아내 새로운 혁명
좋은 쪽으로만 가지 않기에 대응이 숙제

김상균 교수(49)의 연구실은 단출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에 보기 좋게 전시한 저서 10여권과 컴퓨터 모니터, 긴 탁자 두 개가 전부였다. 그 많은 책들은…, 컴퓨터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인테리어 소품은 게임 캐릭터 그림과 피규어 몇 개뿐이었다. 모니터 상단에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에 나오는 ‘류’의 피규어가 붙어 있었다. 김 교수는 ‘영원한 도전자’ ‘끊임없는 탐구자’를 표방하는 류가 자신의 ‘최애’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국내 메타버스 연구의 선구자이자 전문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2020년 하반기에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한 메타버스를 국내에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왕성한 저술, 강연, 방송 활동을 펼치며 메타버스의 흐름을 좇고 있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다방면의 공부를 하고,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게임을 연구하다 디지털 기술의 총체인 메타버스로 관심을 확대했다.

김 교수는 메타버스를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지구’이고 ‘이미 도착한 미래’라고도 했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그들만의 세상인 것 같은 메타버스. 과연 무엇일까. 지금 우리 곁에 얼마나 다가와 있을까. 그 안에는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 메타버스에서 미래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메타버스 세상이 있다는 걸 체감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 7일 경희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메타버스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김상균 교수가 메타버스에 개설한 자신의 연구실. 김상균 교수 제공

김상균 교수가 메타버스에 개설한 자신의 연구실. 김상균 교수 제공

- 새해 트렌드 예측이 쏟아지는 연말이다. 요즘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이고, 메타버스를 더 알기 쉽게 보여드리기 위해 방송 예능·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연말부터 내년 1월까지 메타버스 관련 방송 다큐가 4~5편 나올 것이다. 기업의 전문가나 경영진을 만나는 외부 강연도 많이 한다.”

- 최근 공저 <머니트렌드 2023>에서 ‘테크’ 부분을 맡았다. 거기서, 2023년을 휩쓸 디지털 혁명 3가지 중 첫 번째로 메타버스 혁명을 꼽았다.

“인터넷과 컴퓨터 혁명, 모바일 스마트 혁명에 이어지는 메타버스 혁명이다. 내년에 애플과 삼성이 AR(증강현실) 글래스 같은 신형 기기를 선보이고 각 기업의 메타버스 연계 플랫폼이 쏟아질 것이라 큰 축의 변화가 예상된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산업 구조까지 바뀔 상황이라 새로운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기에 대응을 잘하는 것이 숙제다.”

메타버스 전문가 김상균(49)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2022년 12월 7일 경희대 서울캠퍼스 경영대학원(오비스홀) 506호 교수 연구실에서 차준철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메타버스 전문가 김상균(49)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2022년 12월 7일 경희대 서울캠퍼스 경영대학원(오비스홀) 506호 교수 연구실에서 차준철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자원 한계 없이 창의력 발휘하면 무한 확장
미래 가치 높고 수평적 권력 공간이 특징
시공간의 축을 흔들, 이미 도착한 미래다

- 무수히 받은 질문이겠지만,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다섯 글자, ‘디·지·털·현·실’이 가장 적확한 정의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물리적 현실이라면 메타버스는 디지털 현실이다. 메타버스는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중요하다. 메타버스를 통해서 발생하는 토론, 데이트, 공연 등 모든 일들이 현실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이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메타버스를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가상이라고 하는 순간, 모든 일이 일시적이고 가짜 같고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 메타버스는 어떤 공간인가. 특징은.

“자원의 한계 없이 창의력을 발휘하면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미래 가치가 높다. 더불어 수평적인 권력의 공간이라는 게 핵심 특징이다. 물리적 현실 공간을 보면 위층이 아래층보다 비싸고, 높은 사람이 중심부를 차지하는데 메타버스에서는 굳이 그렇게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물리적 공간의 권력 관계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모두가 수평 연결되는 이상적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

- 시간도 넘나들 수 있나.

“현실에서도 추모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과거와 미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이를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이미 사라진 과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 불가능한 일도 현실로 구현한다. 고인이 된 김자옥씨와 서지원씨를 아바타로 재현해 생전 모습대로 공연하는 모습을 선보인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역사적인 인물들도 현실로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 미국에선 한 달에 1만원쯤 내면 돌아가신 아버지와 채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왔다. 메타버스는 공간과 시간의 축을 흔들 수 있다.”

김상균 교수가 개방형 메타버스 ‘VR 챗’에서 사용하는 아바타. 김상균 교수 제공

김상균 교수가 개방형 메타버스 ‘VR 챗’에서 사용하는 아바타. 김상균 교수 제공

- 이런 메타버스가 지금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건가.

“메타버스가 분명한데 메타버스인 줄 모르는 것들이 당장 많다. 음식 배달 앱이 대표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조카가 그 앱을 보고 말했다. ‘이 안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식당이 있고, 메뉴가 수천 개’라고. 포켓몬고 같은 증강현실 게임을 하고, 줌으로 원격 화상회의를 하며, 아바타를 만들어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는 것도 메타버스의 영역이다. 휴대폰처럼 간편한 기기를 딱 꺼내 썼을 때 안 보이는 입체 공간이 보이는 게 메타버스의 완성 단계인데, 이는 5~10년 정도 걸릴 것이다.”

-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나.

“초등학생부터 60~70대까지, 연락이 많이 온다. 나보다 메타버스를 잘 쓰는 초등학생들은 미래에 관심이 많다. 메타버스 건축가가 되고 싶은데 어느 과에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노년층은 손주나 젊은이들과 대화하고 연결하고 싶은데 뭣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 지금 메타버스에는 누가 살고 있나.

“크게 세 부류다. 메타버스가 뭔지 모르지만 궁금해서 들어오는 사람들, 업무나 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과 메타버스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23개 대학생 500명이 참여하고 있는 유니메타라는 메타버스 세계가 있는데, 그 안에서는 학생들이 현실에서 살듯이 살아가고 있다. 땅을 조금씩 나눠가진 뒤 각자 대학 캠퍼스를 옮겨놓고 독서실·카페·교회·방송사까지 만들었다. 일상생활을 거기서 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삶이다.”

제페토 안의 김상균 교수 아바타 ‘레슬리’. 김상균 교수 제공

제페토 안의 김상균 교수 아바타 ‘레슬리’. 김상균 교수 제공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포용하는 마음으로
사람 사이 연결 가능하게 하는 기회도 줘
산업 생산 효율화하는 데에도 이미 도움

- 메타버스 안의 인간관계는.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포용하는 마음으로 사람 사이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 차별과 혐오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복제해 오는 것이다. 각자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메타버스 세상을 경험하면 인간관계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행복하려면 연결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은 연결에 있다.”

- 메타버스 세상은 경제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지속된다고 했다. 생산·유통·소비 분야의 변화는.

“물건은 당연히 현실 공장에서 나온다. 하지만 생산을 효율화하는 데 메타버스가 이미 도움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회사들이 플랜트나 대형 장비들을 디지털 공간으로 옮기고 있다. 예컨대 메타버스 전시관을 통해 공간 제약 없이 물건을 보여주고 계약을 체결하는 식이다.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이를 ‘주머니 속의 공장’이라고 칭한다.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도 메타버스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 옷도 아바타가 골라 입어볼 수 있다. 영화·연극 관람도 가능하다. 극장에 간 것 같은 재미가 아니라 극장에 간 것과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이다.”

“1층 아파트의 거실 창을 경치 좋은 가상현실(VR) 창으로 설치한 부부는 간밤에 베란다 밖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알지 못한다. 한 달 뒤, 그 집 부인이 퇴근길 버스 안에서 강도를 만나 살해되는데, 버스 안의 승객 12명이 모두 VR 헤드셋을 쓰고 한·일전 축구를 보고 있어 아무도 사고를 목격하지 못한다. 버스 운전사는 없었다. 자율주행차였다.”

김 교수가 올해 출간한 메타버스 단편소설집 <브레인투어>의 첫 에피소드 <아무도 없었다>의 내용이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현실화되는 메타버스 세상의 가까운 미래를 그린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머릿속을 돈 내고 들여다보는 사업이 나타나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사원증 같은 목걸이를 착용시켜 근무 중 감정 상태를 분류해 회사 서버에 기록하는 기업도 등장한다.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로 보여 실감났다. 디스토피아로 예견된 메타버스 사회의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 메타버스는 무한 확대가 가능한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디스토피아가 온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쓴 게 아니다. 기술을 앞세우고 기업이나 정부에 맡기거나 가만히 두기만 하면 디스토피아가 올 수 있는데,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하이테크가 사회에 초래할 부작용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 메타버스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는 얘기인데, 지금 어떤 잘못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나.

“물리적 현실을 그대로 옮기려는 시도부터 소통 오류를 낸다. 주민이 찾지 않는 관공서·기업 전시관을 복제해봐야 아무도 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선거 유세 때 장벽을 치고 정해놓은 연설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경험이 일어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 같은 색깔의 아바타들을 동원하는 불순한 악용 사례도 나왔다. 폭력·사기 등 실제 현실의 범죄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을 앞세우고 기업이나 정부에 맡기면
어린이 상대 범죄 등 디스토피아 올 수도
그러나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충분

-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데, 현행법으로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해자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 실제 접촉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플랫폼 사업자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이런 사태를 막을 방책이 꼭 필요하다.”

-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지난달 28일 ‘메타버스 8대 윤리원칙’을 발표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등 말 그대로 원칙적인 가이드라인인데 이것부터 확실히 지켜나가야 한다. 물리적 현실에서도 중요한 원칙들이 메타버스에서도 당연히 중시되어야 한다. 정부가 제도를 만들고 업계가 따라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게임을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지 말고 메타버스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곁에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 누구든 만날 수 있는 환경이라 위험할 수 있다.”

AI창작공모전 행사에 초청돼 아바타로 참여한 김상균 교수. 김상균 교수 제공

AI창작공모전 행사에 초청돼 아바타로 참여한 김상균 교수. 김상균 교수 제공

- 메타버스는 한국에서만 한때 유행하는 건 아닌가.

“검색량을 보면 중국이 훨씬 뜨겁다. 영국은 이머시브 이코노미(실감 경제), 미국은 웹 3.0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는 하지만, 메타버스 관련 투자 규모는 한국보다 크다. 한국만의 판타지는 아니다.”

- 여전히 메타버스는 뭔지 모르겠고,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보시라고 한다. 그걸 각자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메타버스 세상이다. 메타버스는 지금의 나를 재미있거나 이상하게 꾸미는 게 아니라 내 진짜 아이덴티티가 무엇일까를 좀 더 자유롭게 보여줄 공간이 될 수 있다. 프로필 사진부터 정말 나다운 무언가로 바꿔보고, 한 걸음 나아가 무료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어보시기를 권한다. 평생 짜장면·짬뽕 드시다 자식·손주들이 골라준 새 중국요리도 맛있지 않나. 메타버스에 가면 노년의 첫 해외여행 때 설렘도 느낄 수 있다.”

- 메타버스와 실제 현실 공히, 김 교수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메타버스 연구자라고 해서 디지털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아날로그 세상을 버리고 디지털 현실로 넘어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의 세상이 더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아날로그 세상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 디지털 현실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가진 합리성과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꿈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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