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면 신발부터 보는 게 직업병이 됐죠”

전현진 기자

퇴직 앞둔 김정희 족윤적감정팀장

오는 6월 정년퇴임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범죄분석과 김정희 족윤적감정팀장. 본인 제공

오는 6월 정년퇴임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범죄분석과 김정희 족윤적감정팀장. 본인 제공

20년간 과학수사 ‘숨은 주연’으로
용인 ‘캣맘사건’ 진상파악 등 기여
“형사들이 족적밖에 없다고 할 때
반드시 밝혀내야겠다는 각오 다져”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사람은 날개가 없기에 발자국을 남긴다. 사건·사고 현장에 남은 신발 자국, 바퀴 자국이 미궁에 빠진 범인 추적에 큰 돌파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족윤적(신발·바퀴 자국) 감정은 과학수사의 중요한 요소다.

족윤적 감정 전문가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범죄분석과 김정희 족윤적감정팀장이 오는 6월 정년퇴직한다. 김 팀장은 1986년 3월 일반직 공무원(행정관)으로 임용돼 경찰청에서만 40년 가까이 근무한 과학수사의 ‘숨은 주연’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만난 김 팀장은 자신이 주인공인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족적 분석에 대해 말할 때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실렸다.

“사람들이 ‘어디서 일해요?’라고 물으면 ‘경찰청에서 일해요’라고 답해요. 그럼 놀라면서 ‘경찰관이에요?’라고 다시 묻죠.” 김 팀장이 말했다. “‘아니요. 족윤적 감정을 합니다’라고 말하면 더 놀라더라고요.”

김 팀장이 경찰청에서 처음 맡은 일은 전과 기록과 지문 분석 결과를 대조하는 일을 비롯해 증거 관련 업무였다. 족윤적 감정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은 것은 2004년부터다. 김 팀장의 주전공은 신발 자국이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 샘플. 경찰청 제공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 샘플. 경찰청 제공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에서 채취한 족적을 감정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일이 시작된다. 경찰청 족윤적 감정시스템(FTIS)을 활용해 어떤 브랜드의 신발인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FTIS는 경찰청이 구축한 신발 밑창 데이터베이스다. 수사관들은 발자국과 용의자의 신발을 대조하면서 범인 특정에 활용한다.

족적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크기와 모양, 마모 상태 등에 따라 현장에 몇 명이 있었는지는 물론, 이동 경로, 직업, 신체적 특징을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사람의 신발 밑창은 일반인과 다른 패턴을 보인다. 브레이크나 클러치 패달을 밟는 부분이 많이 파인다. 군인은 보폭이 넓다. 장애·비장애에 따라 같은 신발도 다른 발자국을 남긴다.

김 팀장은 이 일을 하면서 독특한 직업병이 생겼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면 신발부터 보게 되고, 처음 보는 신발은 꼭 바닥을 뒤집어봐요. 마트나 매장에 가서 신발 바닥만 살펴보기도 하고요. 길 가다 발자국을 보면 ‘아 저 신발!’ 하기도 해요. 집에서도 가족들 신발 바닥을 한 번씩 들여다봐요. 안 보고는 못 배겨요.”

흔히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유전자, 지문이 결정적 증거로 여겨진다. 족적은 다른 증거를 보강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CCTV 영상도, 남겨진 지문도 없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족적이 범인을 검거하고 범죄를 해결할 중요한 증거로 작용하는 때도 있다.

2015년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던 여성이 누군가 던진 벽돌에 맞아 숨지는 이른바 ‘캣맘 사건’이 그랬다. 유일한 증거였던 족적이 초등학생이 벌인 일이라는 진상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9년 ‘청담동 주식 부자’ 이모씨 부모 피살 사건도 족적 분석이 용의자 특정을 도왔다.

“형사분들이 분석을 의뢰하면서 ‘족적 밖에 없어요’라고 할 때가 있어요. CCTV나 유전자, 지문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을 때죠. 그럴 때면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마음이 돼요.”

퇴직 후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김 팀장은 자신이 남긴 발자국이 무엇인지 돌이켜본다. 족윤적 감정관 자격증이 도입되고, 경찰청이 한국인증기구(KOLAS)로부터 족윤적 감정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는 데 힘을 보탠 것이 보람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발자국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냄새나고 힘들지 않냐’고 했던 두 아들이 지금은 “엄마 대단하다”면서 인정하는 것도 퇴직을 앞둔 김 팀장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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