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논란...여야 바뀔 때마다 공수 뒤바뀐 ‘행정입법 통제 역사’

정대연·유설희·문광호 기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여야 공방이 뜨겁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여소야대 국회를 우회해 편법으로 행정입법을 추진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개정안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행정입법을 최소화하려는 입법부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여야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수를 달리했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비슷한 취지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기도 했다. 대통령과 여당이 “위헌”을 주장하는 것도 과거와 빼닮았다.

헌법에 따르면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아울러 대통령은 대통령령(시행령)을, 국무총리와 행정 각 부의 장은 총리령·부령(시행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시행령·시행규칙은 상위 법령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입법부가 법률로 일일이 규정할 수 없는 사항을 행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세부 규정을 만들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조응천 의원이 조만간 대표발의할 개정안은 국회법 제92조 2항을 ‘국회 상임위원회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장이 제출한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행정기관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장은 요청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가 대통령령 등의 법률 위반 여부를 검토한 결과를 정부에 통보하면 정부가 이에 대한 처리 결과를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수준의 현행 법보다 국회의 수정·변경 요청 권한을 강화한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행정부의 권한은 점점 커져왔다. 행정부 비대화를 막으려는 국회의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1996년 11월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박상천 의원은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었을 때 7일 내에 국회에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여야는 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이 안을 기초로 ‘대통령령 등이 제·개정된 때에는 7일 이내에 국회에 송부해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을 1997년 1월 통과시켰다. 현행 국회법 98조 2항의 시초다. 이때만 해도 국회의 요구 권한은 없고 정부가 국회에 보고할 의무만 있었다.

2000년 2월에는 국회가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내용에 불합치하다고 판단될 경우 행정기관장에게 이를 통보할 수 있도록 법이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 때 소수야당이 된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라 2005년 7월 국회는 행정기관장이 국회가 통보한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결과를 소관 상임위에 보고하도록 법을 다시 강화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공수가 바뀌었다.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 중심으로 발의된 개정안은 이번에 조 의원이 발의하려는 법안 내용과 거의 똑같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사활을 건 상황을 활용한 야당은 국회법 개정안 연계 처리를 요구했고 여당이 이를 받아들여 2015년 5월 개정안이 통과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며 거부권을 행사했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 등의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유 원내대표는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정부 견제를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12월 박근혜 당시 의원이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된다는 국회 의견이 제시될 경우 정부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사실은 이 법안이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추진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법안은 15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한 법률전문가 의견은 나뉜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행정입법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 권한을 행정부에 일부 위임한 것”이라며 “현재는 행정부가 입법 취지를 넘어서는 시행령을 만들면 이를 통제할 수단이 너무 약해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독일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폐기할 권한까지 부여돼 있다”며 “정부가 법률 개정이 어렵다고 시행령을 바꾸는 것이 오히려 헌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시행령이 모법에 반하느냐는 사법부에서 판단을 하게 돼 있는데, 국회가 틀린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면 위헌 문제가 생긴다”며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정부가 하는 것마다 발목잡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헌법에 따르면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심사권은 법원이 갖는다”며 “국회가 법률에 의해서 대통령에게 권한을 줘놓고 법률에 의하지 않고 권한을 다시 회수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정부에 대한 제재 규정을 담고 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제재 규정이 없다면) 국회가 당연히 (요청)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시행령으로 권리 침해를 받은 개인이 헌법소원이나 소송을 통해 시행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에 국회가 시행령 시정 요구를 제도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해서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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