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문재인 정부 판단 “부당”…신·구 갈등 재점화하나

유정인·심진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가안보실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항소를 16일 취하했다. 국가안보실과 해양경찰청, 국방부 등이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 뒤집기에 나서면서 신·구 권력 갈등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부의 서로 다른 판단 근거를 두고 진영 충돌이 격화하며 ‘진실게임’ 공방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2020년 9월22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 이모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오늘 취하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이씨 유족이 문재인 정부의 ‘자진 월북’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며 청와대와 해양경찰청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정부가 항소해 소송이 진행중이었다.

국가안보실의 항소 취하는 범정부 차원 ‘시정조치’의 일환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의 해당 사건 처리가 ‘부당했다’고 결론짓고, 이날 국가안보실·해양경철청·국방부 등 유관기관이 일제히 입장을 밝히며 전 정부 판단 뒤집기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이씨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진 월북한 것으로 봤는데, 재검토 결과 “자진 월북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윤석열 정부 판단의 골자다.

국가안보실은 “(항소 취하로)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하였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인천해양경찰청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서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조사와 국제사법공조 등 종합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역시 정보공개소송 항소를 취하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보도자료를 내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렸다”면서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하여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 기관의 항소 취하에 따라 군사기밀을 제외하고 유가족에게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1심 판결은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공개 범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실에서 관리하던 해당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돼 공개가 어렵다. 새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해당 기록물의 목록이나 내용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기록물법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있거나,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이뤄지도록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관한 전 대통령 측에서 해제할 수도 있는데 세 가지가 다 쉬운 경우는 아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이 있으면 더 추가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조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청와대가 유족이 낸 소송에 항소하자 “집권세력은 서해공무원의 죽음을 ‘은폐’하려 (한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느냐? 정부의 무능, 아니면 북한의 잔혹함이냐?”고 했다.

신·구 권력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선 후보 당시부터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강하게 각을 세우던 이슈라 정치적 휘발성이 크다. 정보공개가 제한적이라 명확한 자료로 결론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진영간 ‘진실게임’과 정쟁이 반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통령실은 이날 항소 취하 결정을 밝히면서 전임 정부 조치가 부당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뚜렷한 근거없이 자진 월북 프레임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규정됐다면, 거기에 어떤 의도가 있다면 밝혀야 하지 않느냐라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유가족들의 여러 차례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에 국가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며 “신·구 갈등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 정부가 응답했다고 보시는 것이 맞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당장 반박이 나왔다. 윤건영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오늘 해경의 발표는 월북 의도가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도 내놓지 못한 채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려, 오히려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의 아픔이 특정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