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철수 결정 후 열흘···숨가빴던 아프간 협력자 '구출작전'

유신모 기자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오랫 동안 정부의 협력 사업을 함께 해왔던 아프간 현지인 협력자 391명이 26일 한국에 도착한다. 미군 철수 이후 예상보다 급격히 악화된 현지 상황 때문에 비공개로 준비중이던 이들의 ‘구출 작전’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이들의 한국행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정부가 이들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데려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상승할 수 있는 계기라는 평가와 함께 난민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인근에서 한국의 우방국 병사가 외교관과 함께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 국내 이송작전이 시작된 가운데 카불공항 인근에서 한국의 우방국 병사가 외교관과 함께 한국행 아프간인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숨가빴던 아프간 탈출 작전

정부는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시작될 때부터 현지인 협력자들을 입국시키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현지 사정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면서 그동안 준비해왔던 계획들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지난 15일 대사관 철수를 결정하고 17일 새벽 유일하게 남아 있던 재외국민 1명과 공관 인원이 철수한 이후 정부는 미국 등 주요 우방국과 카타르·파키스탄 등 주변국과 접촉하면서 아프간 협력자들을 안전하게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부가 파악한 입국 신청자는 모두 427명이었으나 최종적으로 391명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됐다. 30여명 정도가 현지 잔류 및 제3국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행 희망자 중에는 8월에 태어난 신생아 3명을 포함해 5세 미만의 영유아가 100여명에 달해 분유 등 특별 지원이 필요했다. 또한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 공항에 인파가 몰려 혼란이 극심했고 당초 추진했던 민간 전세기 이용도 불가능해져 급히 군 수송기 3대를 투입했다.

가장 큰 난관은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이후 공항까지 이동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각국 인력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미국의 주도로 20개국이 모인 차관회의가 22일 열리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 자력으로 공항에 집결하는 방식 대신 미국이 거래하는 아프간 버스회사에 협력자들을 태운 뒤 버스가 미군과 탈레반이 함께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게 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이를 위해 카타르에서 주아프간 대사관 업무를 수행하던 공관 직원 4명도 다시 카불 현지로 돌아가 지원에 나섰다. 군 수송기는 23일 중간기착지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 24일부터 카불과 이슬라마바드를 왕복하면서 이들을 실어날랐다.

전날 현지인 협력자와 가족 26명에 이어 이날 오후 6시10분 365명이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면서 391명 전원이 카불을 빠져나왔다. 해당 수송기에는 이들의 한국 이송 지원을 위해 카불에 입국했던 한국 대사관 직원들도 탑승했다. 이날 입국으로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의 한국 직원도 모두 철수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단기비자로 입국, 장기 체류로 전환할 듯

카불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이동한 철수 인원은 이르면 이날 밤 오전 군 수송기 2대에 나눠 탑승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 입국 뒤 방역절차를 거쳐 임시 숙소로 마련된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 예정이다.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로서 별도의 특별 체류허가를 받았다. 난민 심사 절차에 상당한 인력과 심사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제적 신변보호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다. 단기방문 비자(C3)로 입국한 뒤 향후 장기 체류가 가능한 F1 비자로 (F1)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 일각에서 여전히 이들의 국내정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어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2일 ‘난민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25일 현재 2만명이 동의한 상태다. 정부가 처음 아프간 협력자 이송 계획을 세울때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입국자들은 정부가 진행한 아프간 사업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어서 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예멘 난민과는 완전히 경우가 다르다”라며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인권선진국으로서 책임에 의한 당연한 결정이며 국민들도 이를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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