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기자

‘혁신’ 실현할 구체 방안 부족…정당 기반 없는 정책 추진 ‘숙제’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의 ‘안철수표 정책’은 미완성이다. 지난 7일 ‘정책비전 선언문’을 통해 큰 틀의 국정운영 방향 정도를 제시했을 뿐이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온 이제서야 정책 경쟁에 시동을 건 셈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들도 아직은 다소 추상적이고 ‘실행파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b>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환담</b>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왼쪽)가 9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환담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왼쪽)가 9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큰 틀의 국정비전 제시 다소 추상적이란 평가
재벌개혁 실현도 난제 어떻게 관철할지 주목

■ 정책개발은 진행 중

정책 능력은 국정운영 경험과 함께 안 후보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안 후보가 뒤늦게 대선전에 뛰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준비가 짧았기 때문에 ‘콘텐츠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안 후보 캠프의 박선숙 선대본부장은 지난 8일 MBC 라디오에 나와 “7일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며 “앞으로 분야별로 매주 내용이 나오고 그것들을 종합해 내달 10일 종합 공약들이 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제부터 정책 콘텐츠를 차근차근 채워나가겠다는 뜻이다. 실제 안 후보는 9일 ‘북방경제’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주요 선택 기준인 정책 공약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정책이 늦게 나오면서 정책 검증 자체가 제대로 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거전이 이미지나 인사 영입 경쟁, 신변 검증 등으로 주변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을 몰아서 내놓게 되면 정권을 잡게 된 뒤에도 즉흥적으로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우려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안 후보가 선거전략상 뒤늦게 나서면서 결과적으로 이미지 경쟁이란 한국 정치 병폐를 악화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안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구체적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안 후보가 최근에야 공약 개발에 나선 바람에 정책 검증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 정책비전에 담긴 내용도 원론 수준

‘정책비전 선언문’에서 제시된 내용들도 대부분 모범답안에 가까운 원론을 제시했을 뿐이다. 구체적 실천방안과 정책 체계에 있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에서는 “꼭 좋은 말들의 모음처럼 들린다, 역시 아마추어”(이상일 대변인)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진성준 대변인도 “원론적·추상적 차원에서 국민 열망을 담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나마 윤곽을 드러낸 정책들도 “정치권에서 상당 부분 논의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안 후보는 “정치시스템을 바꾸겠다”고 외치면서도 그 정치시스템의 기본인 권력구조와 정당체제, 선거제도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나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쇄신책도 제시되지 않았다. 안 후보 측은 “정당, 선거제도, 권력구조 등은 선거 과정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중소기업 육성, 기초노령연금과 영·유아 보육비 국비 지원 등은 민주당이 4·11 총선 당시 내놓은 공약과 비슷하다. 민주당 공약이 재정 확보 방안이 없는 ‘백화점식’ 공약이란 지적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유사한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감사원 원장의 국회 추천이나 국회 예산안의 조기 제출, 상시 국회와 상시 국정감사 등의 내용은 정치권에서 나왔던 얘기다. 오히려 국회가 예산 편성권이나 감사 기능을 갖도록 하자는 방안까지 나온 상태다. ‘공직자의 독직과 부패에 대한 획기적인 처벌’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 등 당위론에 그치는 것들도 눈에 띈다.

[무소속 후보 안철수 뒤집어보기](3) 정책

권력의 균형과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제안한 대통령 사면권의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 공직 10분의 1로 축소, 청와대 이전 등은 실현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특권을 버리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인사권도 없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지난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임명하는 자리를 10분의 1로 줄이겠다는 안 후보 정책에 “관료 중심으로 갈 수 있어 개혁이 후퇴할 우려가 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고, 청와대 이전 주장에는 “너무 뜻밖”이라고 밝혔다.

안 후보가 말하는 ‘혁신’을 구체적 정책으로 입안해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 후보가 얘기하듯 ‘진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혁신을 정당 기반 없이 현실화하려면 관료조직 장악력이 요구된다. 초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관료사회를 잘 알고 조정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료주의의 벽에 가로막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 경제 정책의) 성공 여부는 재벌의 저항, 관료의 왜곡을 극복하고 일관된 정책을 실현할 준비가 돼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책 실현을 위해선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수반된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누군가 혜택을 받던 부분에서 가져와야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양보와 희생을 요구해야 할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국회에서 정당적 지지 기반 없이 정책을 무슨 수단으로 입법화할 것인지를 좀 더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 결국 안 후보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정치세력의 부재’가 정책 능력에 대해서도 회의론을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 ‘철수노믹스’의 의미와 한계

안 후보가 출마선언 직후 자신의 ‘브랜드정책’처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혁신 경제’다. 그는 “혁신 경제를 통해 튼튼해진 재원으로 좀 더 많은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일어나고, 그게 다시 혁신 경제로 선순환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복지와 혁신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두 바퀴 경제론’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경제민주화나 복지가 바로 성장’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새누리당의 대표적 경제통인 이혜훈 최고위원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성장을 빼고 얘기하는 것처럼 매도한 부분이 있다. 경제민주화를 하면 마치 성장을 못하는 것처럼 말했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가 성장동력과 마치 상충되는 것처럼 설명을 하는데 그 사람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이에 안 후보 캠프의 이원재 정책기획팀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전제조건이며, 성장이 일어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강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안 후보 측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막고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중소기업이 발전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규제를 확대하고, 나아가 대기업에 지원되는 자원을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에서 “동네 빵집을 문닫게 하는 재벌의 골목상권 잠식이 해결되지 않으면 동네 빵집의 혁신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며 “밤잠도 안 자고 기술개발 해봐야 재벌이 기술을 탈취하는 불법부당행위가 근절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혁신은 물건너 간다”고 밝혔다.

한쪽에선 안 후보가 벤처 CEO 경험에 뿌리박은 기업인의 철학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고 있다. 한국 특유의 기형적 금융시스템과 고용·노동시장의 불합리한 격차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흐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안 후보는 ‘출발선의 공평한 기회, 반칙 배제,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안전망’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문제는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부실한 사회안전망의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과도하고 불합리한 격차와 불공평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짚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을 실현하는 데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만큼 이를 어떻게 관철할지도 중요하다. 안 후보가 과거 재벌과 손잡고 은행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 등을 들어 물음표를 다는 이들도 있다. 안 후보가 ‘성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제시된 노선보다는 다소 우클릭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안 후보는 금산분리를 해야 하고 은행을 산업자본에 맡기면 안된다고 했지만 핵심은 재벌의 비은행 금융 계열사 문제”라며 “앞으로는 하나의 정답을 말할 수 없는 현실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 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불거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영입 논란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한 이 전 부총리 영입은 안 후보의 국정 경험 부족을 보완해줄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병폐로 지적되는 ‘모피아’(재정부+마피아의 합성어)의 핵심이자 관치금융의 폐해를 온존시킨 인물로 비판받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이 전 부총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안 후보 측은 “이 전 부총리의 경험과 지혜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진보적 경제학자인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경제정책 총괄역으로 영입됐지만, 장 교수와 이 전 부총리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에서는 “안 후보의 출마 이후 안 후보의 ‘생각’과 ‘실천’에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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