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재벌 규제’는 하되 ‘재벌 중심 경제’는 그대로 유지

이호준·임지선 기자

불공정행위 규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기존 순환출자 인정, 당초 개혁안보다 후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6일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은 당초 당내에서 논의되던 개혁 방안들보다도 크게 후퇴한 수준이다. 재벌 총수와 대기업집단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책이 포함됐지만,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푸는 해법은 제외됐다.

박 후보는 특히 순환출자 해소를 비롯한 재벌개혁 문제를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는 일”로 못박으면서,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경제민주화 논의의 최일선에 배치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측과 상당한 인식 차를 보였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6일 경남 사천 사천시장을 방문하던 중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주꾸미를 담은 통이 엎어지자 시장 상인과 함께 주꾸미를 주워담고 있다.  사천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6일 경남 사천 사천시장을 방문하던 중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주꾸미를 담은 통이 엎어지자 시장 상인과 함께 주꾸미를 주워담고 있다. 사천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박 후보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박 후보는 “공정거래 관련 법률의 집행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대기업집단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강화하고, 대형유통업체 및 가맹사업자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대기업이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준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불공정행위와 관련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만 갖고 있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등에게도 고발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내놨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축소하고 금융·보험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금산분리 강화도 약속했다.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큰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불공정행위 근절과 같은 재벌의 ‘행태’ 규제 외에 재벌 중심의 경제시스템 개편과 관련해서는 다른 두 후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당장 당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했던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이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재벌 총수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지분조정명령제 도입 등은 이번 공약에서 모두 빠졌다.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가) 국민경제에 불필요한 부담을 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재벌 규제’는 하되 ‘재벌 중심 경제’는 그대로 유지

일례로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의지의 기준선이 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해서 박 후보 측은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는 데다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도록 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불과 1, 2%의 지분으로 지배력을 유지하고 계열기업을 확장하고, 경영권을 편법적으로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도 3년 안에 해소토록 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정의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인식이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해 단계적 해소라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내놓고 있는 안철수 후보도 ‘계열분리명령제’라는 ‘비장의 카드’를 제시했지만 박 후보는 이 같은 카드조차 내놓지 않았다. 계열분리명령이란 특정 대기업집단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 시장지배력 남용과 독점 폐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직접 대기업에 계열사 매각을 통해 이를 해소할 것을 명령하는 일종의 분리 수술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불공정행위 등에 대한 규율 수단은 다른 두 후보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고 평가하면서도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행위 규율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구조 교정 수단이 없다는 점은 명백한 한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최근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 ‘투 트랙’으로 옮겨갔는데 ‘경제민주화는 분배 요구’라는 기득권 세력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서 “박 후보가 여전히 박정희 개발모델의 낙수효과, 그리고 최근의 경제위기론에 갇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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