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1) 내 인생의 순간들 - 문재인

김진우 기자

운명의 동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싶은 순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삶은 ‘비주류’였다. 가난한 월남 실향민의 아들이 야권 대권 주자로 설 때까지 헤쳐온 59년. 인생의 변곡점 마디마디마다 ‘비주류’였던 개인사와 암울했던 시대적·역사적 상황이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문 후보의 유·소년기 기억을 지배한 건 ‘가난’이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맨손으로 피란 온 부모는 가난한 삶을 안겼고, 어린 문재인은 가난 때문에 주눅 들고 모멸감까지 느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 중학교 입시에서 체육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뼈가 유연해진다는 식초를 찾다가 빙초산을 잘못 마셔 고생하기도 했다. 그가 ‘내 인생의 순간’으로 ‘경남중 입학’을 뽑은 건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뤄낸 생애 첫 성취이자, “아버님 생전에 드린 유일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문 후보의 삶은 경희대 입학과 함께 요동친다.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수감됐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복무한 뒤 1980년 복학해서도 거리투쟁을 나갔다.

[대선 후보 인물탐구](1) 내 인생의 순간들 - 문재인

다시 구속된 그는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그가 “삶의 극적인 전환점”으로 꼽는 순간이다. 이듬해 8년간 연애 끝에 대학 2년 후배인 김정숙씨와 결혼했다. 구치소 면회, 군 면회, 고시 면회 등으로 이어져온 ‘면회 연애사(史)’의 완결이기도 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문 후보는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가 돼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자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제안을 뿌리치고 19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그가 책에 쓴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는 노 변호사와 함께 노동·시국사건 변호를 주로 맡으며 민주화운동에도 투신했다.

문 후보의 ‘내 인생의 순간들’ 중 두 개는 부산의 ‘거리’와 연관된다. 노 변호사와의 만남 이후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버린 광복동·서면 등 부산의 거리다. 우선 ‘1987년 6월 항쟁’의 거리다. 그는 “전국 어느 곳보다 치열했다”는 그해 부산 민주화 항쟁 현장에서 함께 싸웠다. 그가 기억하는 6월 항쟁은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물결로 가슴이 설레고 감격스러운 현장이었다.

15년 뒤 부산 거리는 기쁨의 공간으로 부활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이 평생을 바쳐온 민주주의, 새 정치의 가치, 지역주의와의 싸움이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뛰쳐나와 ‘축제’를 벌였던 그 거리는 바로 15년 전 “함께 최루탄을 맞으며 누비던 거리”(자서전 <운명>)였다. “영원히 계속됐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2004년 2월 히말라야 포카라의 비경(秘境). 참여정부 첫 민정수석비서관 자리를 1년 만에 그만두고 향한 곳이었다. 수많은 난제와 격무의 연속으로 상할 대로 상한 몸을 안은 채였다. 매우 아름다웠다. “그때 설렘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히말라야 여행 중 노 대통령 탄핵 소식을 접했다. 급히 귀국해 탄핵 심리 법률대리인으로 나섰다. 헌재의 결정은 기각. 문 후보는 “다수당의 수적 횡포에 공분하여 맡은 사건이었다. 국민들의 건강한 상식을 법적으로 설명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2007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문 후보는 이후 노 대통령 퇴임 때까지 함께했다. 그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아 이뤄낸 10·4 남북 공동선언을 ‘내 인생의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실향민의 자식으로 희망이 남달랐고, 우리가 추진하고자 했던 의제들이 거의 합의문에 반영됐다. 혼자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 후보는 노 대통령 퇴임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경남 양산의 시골로 낙향했다. 유배를 가는 심정이었지만 한편으론 꿈꿔왔던 생활이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운명’처럼 다시 문 후보를 ‘그의 길’로 끌어냈다. 문 후보는 지난해 정치권에 입문하는 이유를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내 인생의 순간’은 2010년 딸의 결혼식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서운함과 가정을 꾸리게 된다는 기쁨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되면서 기쁨은 배가됐다. 문 후보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딸과 통화를 끝내면 두 돌이 갓 지난 손자와 통화한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는 “딸 바보에 손자 바보”라고 했다. 격랑의 59년 삶 마지막은 평범한 가족의 에피소드로 채워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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