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

한쪽 운동원 차엔 뭉칫돈, 한쪽은 돈봉투 건넸다 극단적 시도···인구 2만 장수군에 무슨 일이?

박용근 기자

‘돈 살포’ 원시적 선거문화 근절 안 돼

 시민단체 “후보측 법 피해 변명 일관”

 군민들 “당국, 단속 않고 사실상 방임”

장수군의 한 농민회가 ‘돈 주고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장수군의 암적인 존재다’란 현수막을 읍내에 걸어 놓은 모습. 박용근기자

장수군의 한 농민회가 ‘돈 주고 이익을 얻으려는 자는 장수군의 암적인 존재다’란 현수막을 읍내에 걸어 놓은 모습. 박용근기자

“시골 선거에서 돈을 쓰지 않으면 당선되기 어려워요. 군수선거 뿐만 아니라 군의원을 뽑는데도 돈봉투가 돌아 다닙니다. 당장 어제도 군의원 후보가 지인을 통해 돈봉투를 보냈길래 돌려 보냈어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돈선거가 판치는 이유가 뭐겠어요. 선거관리위원회와 사정당국이 구경만 하고 있으니 악화되는 거지요. 근절하는 방법이 왜 없겠습니까. 전방위적인 공명선거감시단을 풀고, 제보자에게 거액을 포상하면서 범법자는 일벌백계로 다스려 주면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26일 오전 7시 전북 장수군에서 만나 본 주민들의 얘기다. 장수군은 인구가 2만여명을 간신히 넘는 국내에서 내로라 할 오지다. 그런데 산골지역인 이곳이 선거철만 되면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른바 ‘돈 선거’ 때문이다. 순박한 시골에 무슨 ‘돈 선거’가 판 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해 보지만 현실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장수의 ‘돈 살포 선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심각성을 더한다. 이를 자성하듯 읍·면 곳곳에는 시민단체들이 내 건 ‘돈을 주지도, 받지도 맙시다’란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골지역엔 돈이 뿌려지는 원시적 선거문화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 지경에 이른 원인으로 검·경과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명선거 의지가 실종된 것을 우선으로 꼽았다.

장수군 농민회와 장수 YMCA 등 9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장수군청앞에서 돈선거 규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장수군민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장수군 시민단체들이 26일 장수군청에서 금품 선거를 규탄하는 군민 궐기대회를 열었다. 시민단체연합 제공

장수군 시민단체들이 26일 장수군청에서 금품 선거를 규탄하는 군민 궐기대회를 열었다. 시민단체연합 제공

지난달 15일 군수후보들로부터 ‘공명선거 실천협약식’을 가졌던 이들이 다시 궐기대회까지 개최하는 이유는 뭘까. 올해도 역시나 ‘돈 선거’가 재현됐기 때문이다. 4명의 후보가 출마한 장수군수 선거전에서 경합 중인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최훈식 후보와 무소속 장영수 후보다. 이 중 최 후보측 선거운동원은 자신의 차량 안에서 5000만원이라는 뭉칫돈이 발견돼 경찰이 구속 수사 중이다. 장 후보측 역시 지지자A씨가 잘 봐달라며 현금 20만원을 지난 23일 주민에게 건넸다가 들통났다. A씨는 금품 살포가 드러나자 이틀 뒤 극단적 선택까지 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궐기대회에서 “지역 내 돈선거에 대한 반성과 공명선거를 위한 자정노력은 커녕 최근 천인공노할 사실들이 드러났다. 장수군수 유력후보인 장영수·최훈식 후보 모두 금품살포 정황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장수군 시민단체들이 군수 출마 후보자들에게 돈 선거를 하지 말자고 받아 놓은 ‘공명선거 실천 서약서’. 장수군 시민단체 제공

장수군 시민단체들이 군수 출마 후보자들에게 돈 선거를 하지 말자고 받아 놓은 ‘공명선거 실천 서약서’. 장수군 시민단체 제공

시민단체들은 “돈을 제공한 사람이 목숨을 끊으려 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겁게 책임져야 할 후보 측은 꼬리자르기와 법꾸라지처럼 법망만을 피해가는 변명만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장수군수 후보들은 부정의 늪에 빠지고 혼탁해진 이러한 상황에 책임있는 답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이러한 참담한 일들이 벌어진 데는 핵심 원인과 실체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면서 “최종 책임자인 후보들은 군민 앞에 서약한 만큼 그 무거운 책임을 ‘사퇴’로 답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군민 서모씨는 “시골 인구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만 되면 돈 살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지금까지 선거관리위원회나 경찰에서 암행단속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면서 “사실상 방임상태로 놓아 두다 보니, 후보자들은 돈을 써야 하고 유권자들은 돈을 기다리고 있는 참담한 꼴이 돼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모씨는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 봤자 안 바뀐다. 시골에서는 돈 살포가 지인들을 통해 암암리에 이뤄지기 때문”이라면서 “공명선거를 위한 감시체계를 구축해 ‘돈을 받으면 큰 일 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대는 몸통을 잡아야지 꼬리자르기 식으로 수사를 해서는 코웃음만 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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