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문재인 정부-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북 비핵화 협상 이끌었지만 북·미 대화 교착 ‘중대 고비’

이주영 기자

대화 원칙 고수한 문 대통령, 판문점서 북과 역사적 만남

북·미 싱가포르 회담 후 북 동창리 발사대 폐기 등 관계 진전

하노이 회담 결렬…선순환만 기대한 정부 안일함 도마에

한반도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가장 공을 들인 분야이다. 정부는 남북 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왔다. 실제 2년6개월 전만 해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서 전쟁 공포가 걷히는 등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는 지금 북·미 협상 교착 국면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70년간 쌓여온 불신과 적대를 주도면밀히 관리하지 못한 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선순환만 기대해온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북·미 정상회담 꽃피운 ‘촉진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이른바 ‘베를린구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한반도 신경제지도, 비정치적 교류 확대 등을 뼈대로 하는 한반도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산가족 상봉,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 중지 등 실천과제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이 있을 때마다 이를 강력 규탄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고수했다.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강행하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던 북한은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피력하며 대화 모드로 방향을 틀었다. 문 대통령의 노력에 김 위원장이 호응한 것인지, 경제발전을 위한 김 위원장의 의도된 변화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남북 지도자가 같은 방향을 보게 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했고,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남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방북해 김 위원장과 면담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비핵화할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때부터 북·미 대화도 시작됐다. 지난해 4월에는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첫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 남북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담김으로써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북·미 대화가 잠시 좌초 위기를 맞은 5월에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꼬인 실타래를 직접 풀었다.

이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양측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 등 4개 항을 기초로 한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외신들은 문 대통령을 ‘협상가’라고 평가했다.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기로 했다. 또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9·19 평양공동선언에 담았다.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에 따라 6·25 전사자에 대한 남북 유해 공동발굴,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 등이 이뤄졌다. 정부의 ‘중재’ 노력이 북·미 대화를 촉진시키고, 다시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듯했다.

■ ‘낙수효과’ 기대와 예견된 실패

[반환점 돈 문재인 정부-한반도 평화프로세스]북 비핵화 협상 이끌었지만 북·미 대화 교착 ‘중대 고비’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올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북측은 남북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뒀다. 남측이 미국을 설득시키지 못해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수모를 겪게 된 것으로 인식했다. ‘하노이 노딜’은 비핵화의 범위와 수순에 대한 북·미 간 뿌리 깊은 시각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단계와 로드맵에 대한 ‘큰 그림’을 먼저 그리기를 원한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를 받아내는 것을 시작으로 ‘주고받기식’ 접근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북·미 협상이 원론적 차원에서 세부 내용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였음에도 막상 이 국면에서 정부는 뒤로 빠져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합의는 나올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댄 채 비핵화 협상을 사실상 북·미 양측에 맡겨두고, ‘당사자’로서 적극 개입하지 않은 우를 범했다. 김 위원장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촉구한 이유다.

이후 정부는 비핵화 로드맵에 북·미가 합의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한두 번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북·미 어느 쪽에서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난 6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듯했으나 그뿐이었다. 남북관계도 차갑게 식어갔다. 남북관계의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북·미관계 진전에 따른 ‘낙수효과’만 기다렸던 정부는 북·미 대화가 꼬이면서 남북 교류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북측은 남측 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월드컵 축구 남북 예선전의 ‘무관중·무중계’ 평양 경기, 금강산지구 남측 시설 철거 지시, 미사일 실험 등 남측에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북·미는 어렵사리 지난달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했지만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김 위원장이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설정한 만큼 늦어도 다음달에는 북·미가 한 번 더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연말까지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북한이 다시 핵·ICBM 실험 카드를 고려할 수도 있다. 올해 말이 한반도 정세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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