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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경 타운’ 정치권 로비 창구였다”

정용인 기자

“‘김찬경 타운’ 정치권 로비 창구였다”

미래저축은행 회장 외암마을 내 고택 집중 매입한 까닭은

고택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기자들이 대문에 바짝 카메라를 붙여봤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두세 팀의 언론사를 제외하곤 풍경은 별로 달라질 게 없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자리잡은 외암민속마을. 유명한 곳이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취화선> 등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빽빽하게 나들이 나온 차량으로 가득 찬다. 지난 2000년부터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마을은 예안 이씨 집성촌이었다. 외암 이간 선생의 5대손인 이상익씨(1848~1897)의 집 건재고택을 중심으로 송화댁, 교수댁, 참판댁 등의 기와집이 모두 예안 이씨 소유였다. 그런데 뒤늦게 이곳이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된 까닭은 지난 2000년대 후반 이 지역 출신 재력가가 건재고택을 매입하면서부터다. 이 재력가는 다름 아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다.

김찬경 회장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외암민속마을 내 건재고택의 안마당. 마을 주민들은 김회장이 이곳에 저축은행 직원들이나 정치권 인사들을 자주 끌어들여 파티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김찬경 회장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외암민속마을 내 건재고택의 안마당. 마을 주민들은 김회장이 이곳에 저축은행 직원들이나 정치권 인사들을 자주 끌어들여 파티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김회장 소유 고택 9채 70억 추

김 회장은 저축은행사태가 나고 200억원을 빼돌려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현장에서 붙들렸다. 김 회장과 김 회장 일가의 전횡에 대한 뉴스가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6월 강남에서 8중 추돌 사건인 ‘벤츠 광란의 질주’ 사건을 일으킨 이는 김 회장의 아들이었다. 미래저축은행이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의혹을 불러온 CMK의 2대 주주였던 것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건재고택만이 아니었다. 김찬경 회장의 외암민속마을 부동산 집중매입 의혹을 제보받은 날은 5월 6일. 김 회장이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외암민속마을의 집들을 집중매입해 왔으며, 김 회장이 빼돌린 돈 중 56억원을 가로채고 달아난 김모씨(57)는 김 회장의 부동산을 관리하던 측근이라는 제보다.

대외적으로 김 회장이 외암마을의 고택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다. 등기부등본에는 김 회장 소유로 지목된 집들은 ‘주식회사 미래상호저축은행’ 제주지점이 소유하거나 이 은행이 집을 담보로 특정인들에게 대출을 해줬다는 것 등만 나온다. 그런데 장모씨(48·여), 최모씨(81), 조모씨(55) 등 이 특정인들이 모두 김 회장의 측근들이며 실소유주는 김 회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의혹은 이것이다. 김 회장이 외암민속마을의 집들을 집중매입, ‘김찬경 타운’을 조성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결국 마을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김 회장의 의도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준봉 외암민속마을 보존회 회장(60)의 말이다. 이 회장은 말을 아꼈다. 주로 예안 이씨 종중을 중심으로 건재고택을 매입한 김 회장에 대한 반감은 있지만 마을 내에는 찬반 여론이 있어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김 회장이 마을에 들어온 이래 도움을 준 것이 없지는 않다. 마을잔치 같은데 소나 돼지 몇 마리를 선뜻 내놓은 적도 있다.”

마을의 전체 67채 집 가운데 김찬경 회장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9채. 시가는 약 7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보존회에 따르면 한때 12채까지 이르렀던 김 회장 소유 집은 지난해 말 3채의 집을 팔면서 9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5월 9일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 중엔 “팔렸다는 집들도 김씨 측근에게 명의만 돌려놓은 것”이라며 “미래저축은행이 어려워지자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건재고택 외에도 대표적으로 감찰댁, 하서원이 김씨가 매입한 집이다. 개인 소유로 되어 있어서인지 마을 안내 지도에도 감찰댁과 하서원은 빠져 있다. 하서원의 경우 아예 들어갈 수 있는 길 자체가 봉쇄되었다. 김씨 소유 재산의 관리인인 장모씨(48·여)가 거주하는 초가집 앞마당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김회장, 고택서 외지인 끌여들여 파티

그런데 왜 김씨는 외암민속마을의 집들을 집중매입했을까. 마을 입구에서 만난 마을주민 ㄴ씨는 “동네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말을 꺼냈다. “김씨 집이 이웃의 배방면에 있었다. 그런데 김씨가 어렸을 때는 집이 못살았나 보더라. 부모 중 한 사람이 동네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게 한이 맺혀 번듯한 양반집을 얻고자 했다고 한다.” ㄴ씨에 따르면 감찰댁 구입의 최종 목적은 부모님을 모시려는 것이었는데, 김씨 부모가 송악면 동학리에 살기를 고집해 결국 그쪽에 번듯한 집을 짓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역시 김 회장이 사들인 외암민속마을 내 ‘하서원’(오른쪽 상단 기와집). 길이 폐쇄돼 관리인이 사는 앞의 초가집(‘개조심’ 팻말이 붙은 곳)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정용인 기자

역시 김 회장이 사들인 외암민속마을 내 ‘하서원’(오른쪽 상단 기와집). 길이 폐쇄돼 관리인이 사는 앞의 초가집(‘개조심’ 팻말이 붙은 곳)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정용인 기자

건재고택이 김 회장 측에 넘어간 과정도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집안의 종손인 이모씨가 소유하고 있던 집은 채무 때문에 여러 차례 압류를 당한다. 그런데 2007년 무렵 조모씨(54)가 소유권 이전청구권 가등기를 한다. 그런데 ㄴ씨에 따르면 이 조모씨가 앞서 등장하는 배방면의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이다. ㄴ씨는 “어릴 때부터 그 집에 드나들던 김 회장이 조씨의 아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었고, 실제 조씨를 내세워 가등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김 회장 측에서는 마을보존회나 지자체에 건재고택을 팔 의사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가격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문제는 김씨에게 매매를 한 이씨가 2009년 자살하면서 정확하게 이씨가 김 회장 측으로부터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이전해줬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결국 매매는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말이다. 어찌됐든 김 회장에게 가문의 고택을 팔아넘긴 것을 두고 예산 이씨 종중을 중심으로 이씨에 대한 비난여론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외암마을 1박후 골프가 정코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

김 회장과 관련한 동네 민심이 좋지만은 않았던 까닭은 또 있다. 외지인인 김 회장이 건재고택을 구입한 후 저축은행 직원이나 외부 손님들을 불러 밤 늦게까지 파티를 벌이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다. “한 번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와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동네 골목길 어귀에다 토하는 등의 난리를 겪고 마을 어른이 김 회장 측 관리인에게 크게 화를 낸 적도 있다”고 마을 주민 ㄷ씨는 말했다. 여기에 김 회장이 대동하고 나타난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퍼져 있다. 외암마을의 한 관리인은 “주로 밤 늦은 시간에 와서 아침 일찍 갔기 때문에 실제로 김 회장의 차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보지 못했다”며 “설령 낮이라도 김 회장의 외제차량에는 짙은 선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김 회장이 동행한 인사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발생한 김씨 관리인이 56억원을 가로채 도망간 사건 역시 동네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있다. 김 회장과 초등학교 동창인 김모씨는 지난 2007년쯤부터 김 회장 재산 관리인으로 동네에서도 종종 얼굴을 보던 사이였다. 한 동네 주민은 “연일 김 회장 이야기가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그 김씨가 돈을 횡령해 도망갔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외암마을의 자신 소유 자택들을 개인용도로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저축은행 관계자 이외에도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김 회장의 집을 다녀갔다. 외암마을에서 1박을 한 뒤, 역시 저축은행 소유인 인근의 ‘아름다운골프CC’에서 골프 라운딩을 하는 것이 정코스였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외암마을보존회 이 회장은 “김 회장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차제에 문화재를 민간인이 거래하게 되면서 구설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도록 지자체나 국가가 매입할 수는 없는지 정부 당국에 탄원을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마을주민 ㄱ씨는 “마을 잔치를 방문한 김 회장이 10만∼20만원짜리 구두상품권을 돌리던 것을 기억한다”며 “요새 김 회장 뉴스를 보면 그렇게 갑부로 소문났던 게 다 일장춘몽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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