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대 퍼스트레이디의 ‘정치’… 최후의 참모 또는 그림자 권력

구혜영 기자

퍼스트레이디는 최고 통치자의 동반자다. 권력 정점에 나란히 서서 정치적 부침을 함께한다. 동업자, 파트너, 최후의 참모로 불린다. 아바타라는 오명도 따라붙는다.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그림자 권력이라서다. 이럴 땐 보조자에 머물러야 한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퍼스트레이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영부인기념도서관에는 “영부인들의 역사는 당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며 특히 당시 여성들의 삶 그 자체를 반영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퍼스트레이디 정치를 키우고 견제할 시스템이 전무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퍼스트레이디 정치란 그저 이상일 뿐이다. 권력 크기만 다를 뿐 정치인의 부인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지난달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세상을 내려놓았다. 박 여사는 평생 2인자였던 남편 때문에 퍼스트레이디엔 오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했을 그 60년 세월만큼은 ‘숨은 권력’ 퍼스트레이디 정치와 다를 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약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약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역대 퍼스트레이디의 ‘정치’… 최후의 참모 또는 그림자 권력

해방 이후 퍼스트레이디는 모두 10명이다. 퍼스트레이디 정치 유형은 시대적, 제도적, 개인적 변수에 따라 갈린다. 대통령학 박사인 함성득 교수는 저서 <영부인론>에서 이를 전통형, 그림자형, 활동형, 동반자형으로 구분했다.

전통형은 공식적인 업무만 수행하며 조용히 대통령을 내조한 경우다. 최규하 전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가 대표적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 일에만 충실했지만 강직한 성품도 지니고 있었다.

최규하 전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 일에만 충실했지만 강직한 성품도 지니고 있었다.

손명순 여사는 군사독재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조용한 내조를 택했다.

손명순 여사는 군사독재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조용한 내조를 택했다.

홍기 여사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로 10대 대통령에 오른 남편을 250여일 동안 도왔다. 대외적 활동이나 정치적 발언은 거의 하지 않고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의례적 일에만 충실했다. 이면에는 강직한 품성도 있었던 것 같다. 퍼스트레이디 역사를 연구했던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은 저서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들>에서 “1980년 9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홍 여사에게 귀빈용 책자를 건넸지만 홍 여사는 손으로 책자를 내쳐 버렸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쿠데타 세력’에 대한 홍 여사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것이다.

손명순 여사는 ‘야당 정치인 김영삼’에서 ‘대통령 김영삼’까지 가난과 가택연금 등 온갖 풍파를 같이 견뎠다. 손 여사가 퍼스트레이디였던 1993~1997년은 여성운동의 르네상스기였다. 여성계는 손 여사가 문민정부 첫 안주인이라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실질적 파트너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손 여사는 뒤로 숨었다. 여성학자이자 방송인인 오한숙희씨는 “손 여사의 소극성은 본인 품성에다 안방정치를 싫어한 김 전 대통령, 군사정권과 차별화하려 했던 시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손 여사는 실제 퍼스트레이디 시절 청와대 참모 부인들과 식사 모임도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이 일찌감치 안방정치를 차단, 손 여사 친·인척 중 정치인은 손주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유일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남편 이승만 전 대통령 신변에 과도하게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남편 이승만 전 대통령 신변에 과도하게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옥숙 여사 이름 앞엔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가 붙었지만 퇴임 후 권력남용이 드러나면서 ‘시끄러운 내조’라는 딱지가 붙었다.

김옥숙 여사 이름 앞엔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가 붙었지만 퇴임 후 권력남용이 드러나면서 ‘시끄러운 내조’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림자형은 전문성이 없다는 점에선 전통형과 유사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이 유형에 가깝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초대 퍼스트레이디다. 3·15 부정선거로 이 전 대통령이 물러나기까지 12년을 청와대에서 지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카 여사는 낯선 땅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힘들었다. <영부인론>에는 이런 이유로 “프란체스카 여사가 남편의 건강과 신변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고 나와 있다. 사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이 전 대통령의 만남을 차단했고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는 비판적 정보도 대부분 막았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동지인 이기붕 국회의장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와 가깝게 지내면서 프란체스카 여사의 ‘인의 장막’은 더욱 두꺼워졌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프란체스카 여사는 비정치적이면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많이 행사했다. 이후 ‘나서면 안 된다’는 논리가 퍼스트레이디 롤모델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김옥숙 여사 이름 앞에는 숱한 수식어가 붙는다. ‘보이지 않는 영부인’ ‘조용한 내조’ 등이다. 화려했던 전임 이순자 여사와 차별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제2부속실 주요 임무가 ‘영부인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것’이라 할 정도였다. 김 여사는 주요 인사들과 개인적으로 만났고 한복, 청와대 식기도 수수한 단색 위주로 바꿨다.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는 이때 생겨났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퇴임 2년 후부터 김 여사를 지칭하는 수식어가 변했다. 남편의 4000억원 비자금 사건이 드러나면서 김 여사의 ‘안방정치’는 뭇매를 맞았다. 외사촌 동생 박철언 전 정무장관을 수시로 불러 국정운영 방향과 총선 공천 등을 논의했던 일도 드러났다(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내용). 6공 후계 구도에 개입, 선거 후 안전 보장을 위해 당초 ‘반(反)김영삼’에서 ‘친(親)김영삼’으로 선회했다는 증언도 있다.

활동형은 정치적·정책적 역할까지 수행했던 유형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와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육영수 여사는 한국형 퍼스트레이디의 롤모델이었다. 양지회 등 독자적인 퍼스트레이디 사업을 개척했다.

육영수 여사는 한국형 퍼스트레이디의 롤모델이었다. 양지회 등 독자적인 퍼스트레이디 사업을 개척했다.

총성 소리로 등장한 5공화국의 퍼스트레이디 이순자 여사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영부인 정치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총성 소리로 등장한 5공화국의 퍼스트레이디 이순자 여사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영부인 정치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육영수 여사는 한국형 퍼스트레이디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최초로 퍼스트레이디 비서실을 공식화했다. ‘양지회’와 ‘육영재단’ 등을 설립, 퍼스트레이디용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후방 지원부대 역할에서 나아가 퍼스트레이디의 독자적 사업 영역을 만든 것이다. 양지회는 1964~1974년까지 육 여사가 직접 관리했던 사회자선단체로 장차관 부인들과 국영기업체장, 군 장성 부인들로 구성됐다. ‘가장 지독한 청와대 내 야당’이 되겠다는 약속은 남편의 이미지 메이킹에만 몰두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야당 방송이었던 동아방송을 끼고 살았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육 여사의 퍼스트레이디 정치엔 그늘도 짙다. 박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했기 때문에 육 여사도 장기적인 활동이 가능했다. 다른 퍼스트레이디들에 견줘 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절이라 상대적으로 ‘포근한’ 퍼스트레이디에 집중된 측면도 있다. 양지회도 사실상 ‘부인용 통치기구’라는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양지회는 야당 의원 부인들을 회원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순자 여사만큼 구설수에 올랐던 퍼스트레이디도 드물다. 1980년대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남편과 나란히 손을 흔들며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여론은 낯설어했다. 화려한 옷, 이태리산 명품 시계로 사치스럽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총성 소리와 함께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대대적인 사회정화운동, 부패정치인 재산몰수법 등을 시도했다. 이 와중에 이 여사까지 영역을 넓히자 여론은 싸늘했다. 1981년 유아교육 진흥을 위한 새세대육영회를 만들고, 1984년엔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지원하는 새세대심장재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여사가 자금 관리를 독점하면서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새세대육영회는 5공 정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을 무마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장영자 사건과 동생 창석씨의 부정축재 사건에 이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전 전 대통령에게 12·12 반란수괴 혐의와 5·18 광주시민 학살 혐의가 더해지면서 이 여사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함 교수는 <영부인론>에서 “이 여사는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이용하겠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활동형이지만 육 여사에 견주면 이 여사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권력 의지와 지향점 차이 때문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는 퇴임 이후 뒤늦게 빛났던 퍼스트레이디였다. 신학을 공부하며 인권운동가로, 민주화운동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는 퇴임 이후 뒤늦게 빛났던 퍼스트레이디였다. 신학을 공부하며 인권운동가로, 민주화운동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독자적인 퍼스트레이디 영역을 개척한 ‘청와대 안의 정치인’으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독자적인 퍼스트레이디 영역을 개척한 ‘청와대 안의 정치인’으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전형적인 참여형 퍼스트레이디다. 대통령의 단순 보조자가 아닌 스스로 전문성을 갖고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쳤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독재와 싸웠던 동지이자 정치적 지분을 나눈 동업자였다. 서울 동교동 자택에 나란히 걸린 문패가 녹록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 이 여사는 청와대 안에서도 독립적인 정치인이었다. 퍼스트레이디의 단독 해외 순방을 개척했고 2002년에는 퍼스트레이디 최초로 유엔 아동특별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대통령과 북한을 동행 방문한 것도 최초 기록이다. 남녀차별금지법 제정, 한국여성재단 발족(1999년), 결식아동 지원을 위한 사랑의 친구들 창립(1998년) 등은 퍼스트레이디가 직접 이슈를 제기하고 실행에 옮겼던 정치적 활동이다. 그러나 1999년 옷 로비사건과 2002년 최규선 게이트로 이 여사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됐다. 김대중 정부 관계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를 본떠 한국판 엘리너 프로젝트를 만들려고 했지만 청와대 내부에서 ‘영부인 활동에 기업이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제동을 걸었다”고 아쉬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정치사회적 평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권양숙 여사는 여성운동가도 직업정치인도 아니었지만 밑바닥부터 다져진 정치적 감수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권양숙 여사는 여성운동가도 직업정치인도 아니었지만 밑바닥부터 다져진 정치적 감수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도 정치인이라는 자각 필요”
여성학자 오한숙희 인터뷰


한국 역대 퍼스트레이디의 ‘정치’… 최후의 참모 또는 그림자 권력

한국 퍼스트레이디 정치는 소외된 분야다. 변변한 연구나 정책적 제도조차 없다. 기록물관리법만 해도 퍼스트레이디는 비껴 간다. 이는 퍼스트레이디 정치의 영향력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독자 예산을 쓸 수 있는 미국과 견주면 뒤처질대로 뒤처져 있다. 여성학자이자 방송인 오한숙희씨(56·사진)는 “퍼스트레이디 활동이 국가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면 평가 자체도 ‘개인적’이거나 ‘비공식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이어 “한국 퍼스트레이디 정치는 대통령에 대한 여론, 정치 상황에 규정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역대 퍼스트레이디들이 전 정권 차별화에 몰두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혼돈의 현대사를 거치는 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국가 비전보다 권력욕이 더 큰 경우가 많았다. 동반자인 퍼스트레이디가 비전을 가질 여유도 없다. 그러다보니 남편의 이미지메이킹에 안주하거나 ‘경조사 아바타’에 그쳤다. 심지어 남편의 지역구 관리를 대신하다 돈 봉투 사건에 휘말린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퍼스트레이디 정치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오씨는 “퍼스트레이디도 정치인이라는 자각과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 때 배우자 검증항목을 두거나 퍼스트레이디 사업을 공식화하자는 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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