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의 실종? 누가 잘못한 것일까

정용인 기자

원 구성 결렬 파장…“핵심지지층 설득해 외연 확장”이 관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6월 29일 원구성 협상을 하기 위해 국회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김영민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6월 29일 원구성 협상을 하기 위해 국회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김영민 기자

상황인식의 양극화. 입장차는 더 벌어졌다.

물밑 대화가 이뤄지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개원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여·야 모두 상대방 탓을 하고 있다.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

여·야 각 당에서 책사로 불리는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각의 ‘논리’는 있었다.

“뉴노멀로 가는 게 아니겠나. 우리나, 미래통합당이나 서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지난 6월 30일 국회에서 만난 민주당 측 인사 ㄱ씨의 말이다.

과거 민주당, 그러니까 지금의 여당이 야당이자 소수당일 때 국회의장은 다수당 여당이,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맡는 게 ‘관례’였다.

“단순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19대 국회 이전에는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다.”

이 인사의 주장에 따르면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던 19대 이전엔 법 문제로 여·야 관계가 시끄러워지면 의장이 직권상정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법사위 양보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된 19대 때부터는 조건이 달라졌다.

국가재난 시 등 예외적 상황이 아닌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직권상정 대신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식으로 여·야의 극한대립을 막았다.

법사위는 여타 상임위에서 결정된 법을 심사한다.

상임위를 통과해도 법사위에서 막히면 아예 본회의 의결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식물국회’라는 말이 나왔다.

19대 이후 입법에 관한 한 법사위원장의 권한이 본회의를 주도하는 국회의장보다 일부에선 더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노멀’이냐, ‘운동권 독재’냐

당 핵심지도부에 있는 또 다른 민주당 인사 ㄴ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한 석이라도 더 얻으면 위원장은 한쪽이 다 갖는다. 그리고 거기서 의견이 다르면 다수결로 그냥 통과시킨다. 법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1988년 이후, 한국의 국회는 상임위나 법안 소위 단계에서는 만장일치제로 운영되어왔다. 이건 뒤집어 말하자면 한 사람이라도 몽니를 부리면 그 법은 통과되지 않는 걸 의미했다. 그게 미국식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위원장을 다 갖고, 다수결을 도입하는 식으로….”

앞서 ㄱ씨가 언급한 ‘뉴노멀’의 내용이다.

신철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상임위원장을 가져온다는 뜻은 결국은 책임을 다 지겠다는 뜻”이라며 “코로나 정국이 아니었다면 민주당 입장에서도 강행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통합당 측은 어떻게 말할까.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그게 그 사람들(민주당)의 수준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들의 눈엔 우리가 적폐고, 보수와 진보의 시각차가 아닌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저들에게는 ‘협치’는 없다. 힘이 있을 때는 밀어붙이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게 책임정치라고 주장한다.”

총선 이후, 적어도 여의도 국회에서 협치는 실종됐다.

정치가 말로 하는 싸움이라면 양보와 타협은 필수다.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

민주당 인사 ㄴ씨는 “지난 총선 이래 이해찬 대표의 워딩에서 협치란 단어가 등장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미국선거제도를 전공한 김장수 소장은 미국 의회의 사례를 드는 것은 엉터리라고 덧붙였다.

“하원에서 다수당이 상임위 위원장을 다 가져가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건 일면만 본 거다. 미국은 상·하원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건국 이래 미국 헌법이 거의 수정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그것은 미국의 헌법이나 정치원리가 근본적으로 다수파의 횡포, 다수결 독재를 막기 위한 정치적 제도로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통합당에 강경파는 없다. 원 구성 협상이 결렬된 것은 우리가 뭐를 더 요구해서가 아니다. 이상한 논리를 대면서 주던 것(법사위원장)을 엎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정권은 실패할 것이다. 박근혜도 똑같았다. 강경파 이야기만 들은 것이다. 그래서 국정교과서나 세월호 사건을 거치며 중도층이 떨어져 나갔다.”

반면 지방정부에서는 또 다른 협치 실험이 시작됐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홍의락 전 민주당 의원의 대구시 경제부시장 취임이다.

박근혜 정부 때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민주당과 했던 ‘경기연정’과 유사한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연정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전격 제안을 두고 홍 전 의원은 한 달 가까이 장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 ‘독배를 마시는 자리’라고 표현했다.

지금의 분위기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홍 부시장의 업무가 시작되는 7월 1일, 권 시장은 ‘대구형 협치’의 시작이라고 평했다.

국회의원은 장관급이다. 반면 부시장자리는 1급이다.

7월 1일 오전 대구시청에서 열린 홍의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구시 경제부시장 취임식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

7월 1일 오전 대구시청에서 열린 홍의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구시 경제부시장 취임식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

■ 협치 실종, 시작은 참여정부 말기부터
“타협의 정치, 협의정치가 언제부터 어려워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그 시점은 ‘참여정부 후반기, 이명박 정부 초반’인 2000년대 중·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총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천막정당이 되고 열린우리당이 예기치 않게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그 시점에 뉴라이트가 나왔다. 정당정치와 시민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이전까지 전직 대통령의 처우와 관련한 암묵적인 룰을 깨뜨렸다.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려 한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이 광주시민 학살이라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핵심지지층을 설득하면서까지 두 사람을 용서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전임 대통령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 임기까지 계속된 정치문화다. 이 정부도 집권하자마자 1년 이상 적폐청산의 정치를 했다.”

협치가 정치적 적대자에 대한 상호인정과 존중이라면, 그것이 밑바탕에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가 세팅되더라도 협치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 교수의 ‘경고’는 결국 여권으로 향한다.

“총선 승리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총선에서 찍어준 사람들이 계속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밑으로는 좀처럼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대선은 51%의 정치다. 40%로는 집권하지 못한다. 좀 더 선명한 승리를 원하는 핵심지지층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오만한 행보를 한다는 것을 여론이 인지하는 순간 지지는 귀신같이 빠진다.”

협치의 실종이 길어질수록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집권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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