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소리만 요란, 엉성한 검찰개혁…‘검찰 조직의 힘’ 뺀 건 일부 성과”

이용욱 논설위원
천정배 전 의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성과·한계·과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천정배 전 의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성과·한계·과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1976년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전두환에게 판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88년 민변 창립 멤버로 활동하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재임 때 ‘6·25는 통일 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했다. 변호사 때부터 검찰개혁을 주장했고, 이론·실무를 겸비한 검찰개혁 전문가로 통한다. 2019년 국회 ‘4+1 협의체’에 참여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직접 다듬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권과 검찰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및 원전 수사,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 등에서 건건이 부딪쳤다. 법무부가 지난달 공직자·부패 등 6대 범죄를 검찰 형사부가 직접 수사하려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직개편안을 내놓자, 검찰은 정권 관련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사실 검찰개혁은 노무현 정부의 숙원이었다. 노무현 정부 두 번째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의원(67)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 검찰개혁을 두고 “소리가 요란한 데 비해서 내용은 미흡하다. 검찰 힘 빼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검찰개혁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내실 있는 토론이 안 이뤄졌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딱 두 가지로 구호화됐다”며 “검찰도 계속 개혁해가야겠지만 경찰이나 공수처도 역량 있고 중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권·소추권의 완전 분리, 공수처 도입, 검찰·청와대 직거래 금지 등을 주장해왔으며,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한 법무부 장관으로 기록됐다. 공수처 논의를 위한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도 참여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태블릿PC로 법조문 하나하나를 확인하면서 현안에 대해 언급했으며,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과거 국회에서 보던 정치인이 아니라 법조인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은 ‘미완’
검사의 기득권 지향 약화시켜
하지만 힘 빼는 게 목표는 아냐
내실 있는 토론 없어 내용 부실

-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평가해 달라.

“미완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검찰 조직이 워낙 세서 힘 빼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 기득권 지향적인 검사 사회 분위기를 많이 약화시켰다고 본다. 하지만 힘 빼는 거 자체가 목표는 아니지 않으냐. 검찰개혁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내실 있는 토론이 안 이뤄졌다. 엉성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를 만드는 것 딱 두 가지로 구호화됐다.”

- 전직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개혁의 철학은 무엇이었나.

“검찰개혁은 수십년 동안 시대적 과제였고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권력의 시녀에서 탈피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느냐의 문제, 또 하나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고 국민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만 검찰 권한을 무조건 약화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경찰개혁은 빠뜨려놓고 검찰개혁에만 주력하는 것 같다. 검찰도 계속 개혁해가야겠지만 경찰이나 공수처도 역량 있고 중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국민 입장에서 바람직한 소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 공수처가 안착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4+1 협의체에서 공수처법을 정리해 다듬는 일을 했다. 당시에도 공수처가 약체 기관이 될 거 같아 걱정했다. 공수처장과 검사, 직원들조차도 단기 임명직이고 몇년 일하다 뜰 사람들이다. 거기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승진도 없을 거 같고, 역량도 쌓이지 않는다.”

- 공수처가 판검사 사건 등을 검찰에 이첩한 뒤 수사 완료 후 다시 이첩받아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논란이 일고 있다. 입법 미비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닌가.

“공수처 역량이 뛰어나야 할 텐데, 그런 체제를 갖추지 못할 것 같아서 더 강력한 권한을 주자고 생각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는 공수처가 주도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공수처법 24조 1항을 제가 넣었다. 원안은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하고 경합할 수 있게 해놨는데, 공수처 범죄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기관이 (공수처) 이첩 요청을 받을 경우 응해야 하며, 다른 수사기관이 공수처 수사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했다. 그때도 논란이 됐지만, 이왕 만들 바에는 공수처 권한을 강력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약해질 거 같아서…. 유보부 이첩 논란이 발생할지 몰랐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소리만 요란, 엉성한 검찰개혁…‘검찰 조직의 힘’ 뺀 건 일부 성과”

심층 검토 없이 졸속으로 탄생
공수처, 어찌 작동할지 겁난다
경찰, 수사권 가질 준비돼 있나?
현시점에서 ‘검수완박’ 불가능

- 4+1 협의체에서 공수처법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뜻인가.

“공수처라는 새로운 국가기구가 심층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유보부 이첩을 계산할 여유가 없었다. 시뮬레이션도 못 돌렸다. 이 기구가 어떻게 작동할지 저도 겁이 나더라.”

- 4+1 협의체 합의안이 2019년 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당이 법을 바꿔서 2020년 말 단독 처리했다.

“공수처를 만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기구로 만들면 정치권력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4+1 협의체안은 7명의 공수처장추천위원회가 두 사람을 뽑아 올려서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돼 있다. 추천위원 7명 중 2명은 야당 추천이며, 추천위에서 6명이 찬성해야 공수처장 후보로 의결하도록 했다. 공수처장은 대통령과 여당의 일방 인사는 안 되게 돼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장 최종 후보군 추천에 대한 합의가 무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말 ‘추천위 6명 찬성’ 조건을 3분의 2 찬성으로 약화시킨 공수처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야당에 보장된 비토권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개편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전 지휘는 적절치 않다. 권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장관을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 검찰 독자성을 인정하고 사후 시정하는 게 맞지, ‘먼저 인가받고 수사하라’는 것은 과도한 통제다. 지방검찰청에서 수사하려면 법무장관 승인을 받도록 한 것도 부적절하다. 검찰총장 권한을 일선에 분산시키고, (개개 검사들이) 재량껏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검찰개혁의 한 방향인데 그것과 어긋난다.”

- 여당 강경파들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한다.

“검찰은 전문소추기관으로 만족하고 수사기관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결과적으로 검수완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 기능은 검찰 못지않게 역량 있고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기구, 예컨대 ‘한국형 FBI’ 같은 전문수사기구를 만들어 서서히 넘겨줘야 한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검수완박은 가능하지 않다. 검찰 권한을 경찰한테 준다면 어떻게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수사역량을 제고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매우 미흡하다. 경찰이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느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수사는 누구에게 줄 것이냐.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그대로 가면 위험할 수 있다. 경찰의 역량과 독립성을 담보하고 권력남용을 차단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는지, 내가 과문한 탓인지 잘 모르겠다.”

- 법무부 장관 시절 ‘6·25는 통일 전쟁’ 발언으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했고,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하면서 사퇴했다. 현 정부에서 지휘권 발동이 매우 잦았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이전까지 (정부가) 공안사범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에게 부당한 구속권을 남발해왔고, 그 관행을 바꾸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실제 강 교수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나중에 ‘잘했다. 강정구가 대통령 조카여서 봐준 거 아니잖으냐’고 했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 (수사지휘권 발동이) 너무 잦았고, 명백하게 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파적 관점에서 한 것 아니냐고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추미애·윤석열 갈등, 상상 초월
극한 대립 하는 여야 보는 듯
법무부 장관은 좋든 싫든 간에
검찰총장과 소통하고 협의해야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극한 대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좋든 싫든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과 소통하고 협의해야 한다. 소통 자체가 단절돼 버린 것 아닌가. 여야가 극한 대립하는 것처럼 관계가 정립된 거 같더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 청와대와 검찰 간 소통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청와대와 검찰의 직거래를 근절해야 한다. 청와대가 (검찰에) 할 말 있으면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해야 한다.”

- 현 정부에서 검찰 인사 공정성이 이뤄졌다고 보는가.

“윤석열 전 총장 취임 직후 첫 검찰 인사는 매우 이례적이고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검사장 중에서도 상당한 경력자가 가야 할 자리에 초임 검사를 앉히는 등 윤석열 사조직 인사가 이뤄져서 아주 괴이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윤 전 총장과 정권 사이가 나빠지니까, (정권에서) 윤석열 측근 인사들을 물먹였다. 결과적으로 맞는 결과가 됐다.”

- 그렇다면 검찰의 수사 공정성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접대 의혹이 불거졌다. 그런데 검찰이 형사처벌 안 된다고 검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더라. 3명의 검사가 술자리에 참석했는데, 1명만 불구속 기소됐고, 2명에게는 과태료만 물렸다. 2명은 일찍 자리를 떴고 청탁금지법이 규정한 접대 금액(100만원 초과)에 미달하는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기 식구라면 가혹하게 법을 적용해서 기소했어야 마땅하다.”

- 여권의 공수처 때리기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있다.

“정권의 핵심 실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공수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면 협박 내지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 공수처법에 허점이 많은 만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야당 비토권 없이 공수처장을 임명하게 한 것은 고쳐야 한다. 그것이 안 고쳐진다면 대통령도 바뀌고 할 텐데, 공수처가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있을 수 있겠느냐. 공수처 역량 강화 문제는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

- 지난달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기였다.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때 노 전 대통령 지지를 가장 먼저 선언한 현역 의원이었지만, 차별화 이후 다른 길을 걸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존경스러웠지만 범접하긴 어려웠다. 노 전 대통령은 감정도 드러내고, 은혜도 갚고 복수도 할 거 같고, 보통 사람들의 심리나 정서와 일체화된 사람이죠. (보수 쪽으로) 기울어졌던 한국사회 운동장의 방향을 바꾸는 데 절대적으로 공헌하신 지도자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게 많다. 대들기도 많이 했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노 전 대통령 심경을 불편하게 해드렸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도 10년 이상 정치를 했지만, 노 전 대통령하고 관계가 제 정치 행보를 규정했던 거 같다. 중요한 국면에 있을 때도 ‘저 양반은 어떤 판단을 했을까’ 늘 의식하고 산다.”

- 2015년 호남을 기반으로 한 신당을 창당하면서 지역정치인으로 스스로 위치를 좁혔다는 비판이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전국적으로 다당제 구조를 이루고 싶었고, 호남에서 최소한의 경쟁 구조를 만들어서 호남정치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 정치를 그만둔 것인가. 향후 계획은.

“지난해 총선 후 더 이상 출마 안 한다고 했지만,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광주에서 상당 기간 시민들과 호흡하면서 성원을 받았기 때문에 광주 발전을 위해서 AS(애프터서비스)를 하겠다. 내년 대선 기회에 호남 발전 비전이나 정책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걸 대통령 공약에 담는 노력을 해서 호남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소리만 요란, 엉성한 검찰개혁…‘검찰 조직의 힘’ 뺀 건 일부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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