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가 온다, 새로운 세대가 온다…이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국민’의 시대를 살았던 ‘6·25세대’와 ‘시민’의 시대를 열었던 ‘586 민주화세대’는 ‘개인’의 시대를 열고 있는 MZ세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1985년생 이준석의 부상은 전면적 세대교체 선언이다. 이준석 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세대의 등장을 막을 수는 없다.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한다.  연합뉴스·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민’의 시대를 살았던 ‘6·25세대’와 ‘시민’의 시대를 열었던 ‘586 민주화세대’는 ‘개인’의 시대를 열고 있는 MZ세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1985년생 이준석의 부상은 전면적 세대교체 선언이다. 이준석 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세대의 등장을 막을 수는 없다.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한다. 연합뉴스·경향신문 자료사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해변 상륙 시퀀스는 전쟁의 참혹을 실감나게 그렸다. 팔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날아간 장면을 (모든 사람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낄 의무가 있다는 듯) 담담하게(?) 찍었다. 그날은 1944년 6월6일이다. 우리도 6월은 전쟁으로 기억한다.

식민지 치하서 태어나
6·25 겪으며 청춘을 보낸 ‘1920~1930년대생’…
‘10대 때 철이 들 수 밖에 없던’ 20세기 가장 위대한 세대

미국 NBC의 대표적 앵커이자 저널리스트인 톰 브로코는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에서 1910~1920년대에 태어난 부모세대에게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경의를 표했다. 1940년생인 그는 1984년 봄, 아돌프 히틀러 제3제국의 종막이 시작된 연합군의 대규모 유럽 침공 D-데이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참전 군인들과 노르망디로 갔다.

“그들은 내가 성장하는 동안 내 주변에 어디든지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무엇을 이룩했는지 내가 제대로 인정하거나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해리 가튼도 우리와 동행이었는데 그는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즐비하게 뒹굴던 시체와 비명 소리가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는 그때 무서웠느냐고 물었다. ‘두려움과 분노, 평온함이 교차되며 스쳐 지나갔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렬했어요.’ ”

이 세대는 어린 시절 참혹한 대공황을 겪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정치·경제·군사·과학기술·문화에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주역이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한국에서도 기꺼이 싸웠다. 이들은 1950년대 공산주의 소련이 두려웠다. 케네디의 죽음과 닉슨의 사임도 지켜보았다. 1960~1970년대에 자녀들이 반전과 히피문화에 빠져드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냉전도 묵묵히 참아냈다. 미국의 언론은 이 세대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세대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는 1920~1930년대 이 땅에 태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 세대다. (불행하게도 1910년대 태어난 분들은 해방되기 전에 성인이 된 죄(?)로 친일이든 반일이든 일본에 대한 태도를 가져야 했다.) 그들은 식민지에 태어나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어린 날을 보냈다. 해방되자 분단이 기다렸다. 끔찍한 좌우대립도 겪었다. 혼돈과 혼란, 공포와 불안 속에 청춘은 흘러가버렸다. 죽는 날까지 씻기지 않을 영혼의 상처인 6·25전쟁도 경험했다. 10대에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세대다.

이 세대의 대표적 지성인 이어령은 언젠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 강연에서 “나보다 더 늦게 태어난 나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들은 조국보다 먼저 태어났다. 민주주의를 갈망했으나(4·19) 몇 차례의 쿠데타 앞에 저항 못한 무기력을 부끄러워했다. 자신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으나 먹지도 입지도 않으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보릿고개를 견뎌내며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는 생각 하나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그 시대의 모토였다. 독일로 갔고 중동으로도 갔다. ‘한강의 기적’은 그들이 이룬 신화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는 자식들을 보며 하루도 맘 편히 자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웠고 때론 자식들과 불화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식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젠 힘도 없고 건강도 잃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 진정한 영웅들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이자
민주화의 주역 ‘1953~1968년대생’…
이들은 ‘20대에 철이 들 수 밖에 없던 세대’

미국인들은 위대한 세대에 이어 또 하나의 세대에 주목했다. 미국인들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1965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세대라 불렀다. 한때 ‘잃어버린 세대’라 불린 이들이 재평가받게 된 것은 베이비부머인 레너드 스타인혼이 2006년에 쓴 책 <더 위대한 세대(The Greater Generation)> 때문이다. 실용적인 세대라 불렸으나 부모들에게는 이기적 세대로 인식되어 온 그들에게 1946년에 태어난 빌 클린턴은 그 세대의 총아였다. 클린턴의 개인사가 그들 세대의 역사다. 클린턴의 문화가 그들의 문화였고, 클린턴의 정치의식이 그들의 정치의식이었다. 그러므로 1992년 그들이 미국 유권자의 중심으로 떠올랐을 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스타인혼 교수가 이 책을 쓴 것은 빌 클린턴과 같은 1946년생인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그들 세대의 가치가 훼손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클린턴을 선택한 것도 그들이고 부시를 선택한 것도 그들이다. ‘586세대’의 광주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것은 베트남전이었다. 반전과 히피로 상징되던 보헤미안(진보) 기질은 시간이 흐르자 부르주아(보수) 기질로 변질되었다. 1960년대 보헤미안 가치와 1980년대 부르주아적 문화의 모순적 결합인 보보스(BOBOS)는 ‘강남 좌파’와 같은 변절의 상징이다.

한국에도 1953~1968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민주화세대’가 있다. 53년생은 전쟁이 끝나는 해에 태어났다. 대학에 입학하던 1972년에는 유신이 선포됐다. 이른바 긴급조치 시대,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길고도 추웠던 겨울은 1987년 6월에 끝났다. 1968년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해였다.

이들은 보릿고개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풍족과도 거리가 멀었다. 국민교육헌장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중고생들은 체력 테스트에서 모조 수류탄을 던졌다. 여학생들도 군사훈련을 받았다. 북한보다는 북괴라는 단어가 더 익숙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에 기쁨보다 두려움에 떨던 세대였다. 또 한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광주를 경험했다. 수배와 고문, 투옥이 이어졌다. 살아서 서른을 맞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였다. 20대에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시대’ 살았던 6·25 세대와
‘시민의 시대’ 살았던 586 세대는
‘개인의 시대’ 여는 MZ 세대의 도전에 직면

시대가 세대의 정체성을 만든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불화는 ‘시대와의 불화’ 때문이다. 식민과 전쟁으로 정체성이 만들어진 ‘6·25세대’와 독재와 민주로 정체성이 만들어진 ‘민주화세대’는 실존적으로 불화의 운명이다.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아버지의 라듸오>는 두 세대의 불화와 화해를 담은 책이다. 저자인 아버지 김해수(1923~2005)는 한국 최초의 라디오 ‘금성 A-501’을 만든 엔지니어이고, 책을 엮은 딸 김진주는 ‘사노맹’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부인이다. ‘산업역군’ 아버지의 기록을 ‘민주투사’ 딸이 엮은 것이다.

김진주(1955~)는 약사라는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구로공단 미싱사가 되어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던 박노해 시인과 결혼한다. 금성사(현 LG전자) 1회 공채시험에 수석 합격하여 최초의 라디오, TV 등을 설계하며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새벽을 연 김해수는 1991년 수배 중이던 딸과 사위가 안기부에 체포되자 거실에 자랑스럽게 걸어두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표창장을 책상 서랍 속에 밀어 넣는다.

김해수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산업현장에서 심혈을 바쳤던 우리 세대는 위대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당했던 고통을 강요하거나 외면했던 죄를 짓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임무를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김진주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 초에 첨단의 전자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로서 그가 살아낸 한국의 현대사는 ‘희망의 시대’이자 ‘배신의 시대’였다. 아버지가 겪어온 날들의 희망과 배반을 잊지 않고 되새겨보는 일은 지금 이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 삶의 의미와 과제들을 좀 더 뚜렷하게 밝혀주리라 믿는다.”

아버지의 육필 원고를 정리하던 김진주는 ‘아버지의 라디오’를 찾아 나섰다. 전국에 대여섯 대만 남은 아버지의 라디오는 2016년 무려 57년 만에 부활했다. 김진주는 아버지가 손수 만든 ‘금성 A-501’ 라디오가 세상을 향해 첫 발신을 하던 순간에 전율을 느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김해수는 “후손들이 우리 세대를 향해 기립박수를 쳐줄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둔다. 라디오 시대보다 소통의 기술이 훨씬 발달된 인터넷 세상을 경쾌한 걸음으로 누비고 다니는 저 낯선 세대를 믿어도 좋을 것인가”라며 자식 세대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다. 김진주도 “21세기의 험로를 함께 개척하고 있는 우리 세대와 신세대는 서로를 배반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며 아버지와 같은 경계를 살짝 드러냈다.

김진주가 말한 ‘신세대’(MZ세대)가 김해수가 말한 ‘낯선 세대’(민주화세대)를 밀어내기 위해 몰려오고 있다. 6·25로 6월을 기억하는 세대가 6·10으로 6월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밀려났듯이 ‘6·11’(국민의힘 전당대회)로 6월을 기억할 수 있는 세대에게 밀려날 운명이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세대가 주역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후진국 세대가 선진국 세대에게 밀려나는 것은 석기가 청동기나 철기에 밀려나듯, 칼이 총에 밀려나듯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586 세대가 물러나 ‘이준석’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준석 태풍’이 불기에 586 세대가 날아간 것

‘국민’의 시대를 살았던 ‘6·25세대’와 ‘시민’의 시대를 열었던 ‘586 민주화세대’는 ‘개인’의 시대를 열고 있는 ‘MZ세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이들은 혁명의 무기인 스마트폰으로 무장했다. ‘메타버스’에서 일상을 즐기는 이들은 몽골 기병보다 빠르다. 1985년생 이준석이 상징하는 디지털 세대의 세대교체 선언이다.

지난 칼럼에서 “어둠이 물러가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라고 썼다. ‘586세대’가 물러가서 이준석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준석태풍이 불기 때문에 ‘586세대’가 쫓겨나는 것이다. 이준석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세대의 등장을 막을 수는 없다. 이 세대는 퍼스트 펭귄 이준석을 따라 두려움 없이 뛰어내릴 것이다.

2030세대는 지난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자신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더 이상 변방이 아니라 중심, 변수가 아니라 상수, 객체가 아니라 주체, 엑스트라가 아니라 주연임을 깨달았다. 세대교체는 불가역적 흐름이다.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한다. 이 세대의 지지를 놓치고 집권할 수는 없다.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구시대는 와해적 종말을 맞는다.

‘이준석 바람’은 꺾일 수도 있지만
‘이준석 세대’의 등장은 막을 수 없어…
다음 대통령은 이 세대가 결정

나의 아버지 세대를 존경하고
나와 같은 민주화 세대에 경의를 갖지만 이젠 물러날 때…
나는 ‘새로운 세대’를 신뢰한다

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세대’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을 표한다. 그들이 남긴 업적과 유산은 세계 어느 세대와 비교해도 위대하다. 평양 근교에서 태어나 전쟁 중 내려오신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같은 위대한 유산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DNA를 내게 남기고 돌아가셨다.

나는 같은 세대인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깊은 경의를 갖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들과 같은 용기가 없었던 내게 영웅이었던 그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마음속 눈물로 안타깝게 보내고 있다. 우리 세대도 아버지 세대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우리 시대의 역할을 잘 해냈다. 다음 세대를 믿고 물러갈 때가 됐다.

나는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딸이 있다. 선진국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에 대한 열등감도 없고 자유분방한 그 세대를 나는 신뢰한다. 우리의 불편은 완전히 다른 세 세대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현실이다. 불편해도 괜찮다. 이 세대는 대한민국을 훨씬 위대한 나라로 이끌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내 딸도 김진주와 같이 아빠 세대를 좀 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박성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새로운 시대가 온다, 새로운 세대가 온다…이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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