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 과열 방치하는 윤석열 캠프, 시민 목소리 안 들을 건가

정치부|조문희 기자

“기자회견문 하나 낭독하겠다는데 그것도 못하게 할 만큼 여유가 없으신가요. 참담합니다.”

11일 오전 전남 목포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앞. 이정석 전 전남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집행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방문을 앞두고 이곳에 왔다. 목포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20여명과 ‘민주헌정질서 파괴자 윤석열 목포방문 반대한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꺼낸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진 게시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기념관 계단 위에서 그는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광주와 목포에 방문하는 건 지역 지지율 회복을 노린 정치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막상 현장에서 그의 목소리는 잘 안들렸다. ‘윤사단’ 회원 등 윤 후보의 지지자들이 계단 바로 아래서 맞불시위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장동을 특검하라” “정권교체 윤석열” “부패 척결 윤석열”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할 때 이들은 확성기를 들고 “윤석열 방문 찬성한다”고 외쳤다. 간간이 ‘특검하라’고 적힌 스티커를 부착한 북도 두들겼다. 여러 번 기자회견문 낭독을 시도한 이 전 위원장은 끝내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기자회견문만 읽을게요. 저희가 목소리 내는 것도 권리잖아요.”

전날인 10일 광주 5·18민주묘지 풍경도 유사했다. 묘지 입구인 ‘민주의문’ 앞에서 윤 후보의 참배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윤 후보의 지지자들이 뒤엉켜 서로 소리를 질렀다. “광주학살 부정하는 윤석열은 오지마라”는 외침과 “5·18 인정하니까 왔다 이 00놈아” 욕설이 허공 중에 흩어졌다. 현장에 있던 한 할머니는 “(반대 시위하는 사람들은) 다 이재명 지지자예요”라는 윤 후보 지지자의 말에 주저 앉았다. “잘못했으니 사과하라고. 누구 편인지는 왜 묻냐고.”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막는 지지세력의 거친 행보는 윤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2월 16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여성 정책을 발표하던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곽이경 활동가는 사흘 전 문 후보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했다. 문 후보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곽 활동가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지지자들이 연이어 외친 “나중에” 구호에 막히고 말았다. 문 대통령 집권 5년차인 지금 차별금지법 입법은 아직이다.

미국 역사학자 서스턴 클라크의 논픽션 <라스트 캠페인>에는 로버트 F. 케네디가 볼주립 대학교 연설 중 학생들에게 “횡설수설한다”는 등 비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1968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 찬반 여론과 빈곤 문제, 인종 차별로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지지자들이 학생을 향해 야유하자 케네디는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질문하신 분은 제 의견에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비판이야말로 이 나라가 진보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케네디는 미 정치사에서 ‘아쉬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해 6월 피격돼 경선을 완주하지 못한 그의 장례식에는 백인, 흑인, 이민자, 빈곤한 시민이 너나없이 모였다. 클라크는 “케네디가 당선됐다면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견이나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지지자와 우리 편에 쓴소리 못하는 후보가 ‘다른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모든 대선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새로운 정권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오늘,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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