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간과한 헌법 정신과 책임총리제

정치부|박광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첫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첫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현재 초대 내각 국무위원(장관) 18명 중 14명을 임명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7명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인 김부겸 전 총리 제청으로, 나머지 7명은 김 전 총리 퇴임 후 총리 직무대행을 맡은 추 부총리 제청으로 임명됐다.

대한민국 헌법 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임명된 윤석열 정부 장관들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총리가 제청한 경우는 없다. 윤 대통령이 낙점한 한덕수 총리 후보자가 지명 발표되고 한달여간 국회 임명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가들은 총리가 없는 상태에서 총리 직무대행의 장관 임명 제청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에 총리 직무대행도 국무위원을 제청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으며, 직무대행 신분으로 헌법상 총리의 고유 권한까지 행사하는 건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된 총리가 대통령에게 제청권을 행사함으로써 국회가 대통령의 내각 구성을 견제토록 한 헌법 정신과도 어긋난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이전 정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알고 있다.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고 밝혔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박근혜 정부 마지막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었던 유일호 총리 직무대행이 장관 3명을 임명 제청한 사례를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자며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외친 윤 대통령이 헌법상 논란 소지가 있는 전 정부 결정을 답습한 행태로 부적절하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제와도 맞지 않다.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장관 인선 발표 때마다 한덕수 후보자가 윤 당선인에게 국무위원 추천권을 행사했다고 강조했다. 인수위는 “인수위에서 총리 후보자가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권을 공식 행사한 첫 사례”라며 “책임총리제 실현의 첫걸음이라는 윤 당선인의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 대통령은 한 후보자에게 인사청문회 직후 “윤석열 정권의 총리는 한덕수밖에 없다”며 전적인 신뢰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후보자가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되더라도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은 한 후보자의 장관 임명 제청권이 거의 배제된 상태로 출범하는 꼴이 됐다.

윤 대통령에겐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책임총리제 취지는 희미해졌고, 무엇보다 헌법정신이 간과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취임날 국민 앞에서 한 선서 문구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된다. 취임 선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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