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②합의와 대립 사이…균형추인가

공매도·복지확대·균형외교·일회용품 규제

이념 집단 간 ‘사회적 합의’ 수준 높아

보수, ‘진보 의제’ 환경·복지에 전향적 태도

‘대립 이슈’ 윤 정권서 정치·사회 혼란

각자의 요구를 담은 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구호가 내걸린 천막농성장들이 2023년 송년을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인도에 줄지어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사진 크게보기

각자의 요구를 담은 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구호가 내걸린 천막농성장들이 2023년 송년을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말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인도에 줄지어 서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정책 현안별로 진보와 보수, 중도의 입장을 보면 해당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혹은 대립 수준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 여론 지형도에서 그 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입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사형제, 공매도, 복지확대, 균형외교, 일회용품 규제에 대한 여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념 집단 간 입장 차이가 크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 정도가 높은 이슈들인 것이다. 특히 사형제에 관한 의견은 합의 수준이 대단히 높았다. 이념을 막론하고 사형 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진보 72%, 중도 81%, 보수 80%가 찬성했다. 엄격한 법집행은 전통적으로 보수가 선호하는 가치이다보니 사형 재개에 대한 진보의 높은 찬성 여론은 특이하다. 경향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진보 응답자들은 대다수 정책 현안에서 전통적인 이념 지향에 따른 선택을 했는데, 사형제에 대해선 달랐다. 한국은 법률상 사형제는 유지하고 있으나, 실제 사형 집행은 1985년이 마지막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한 상태다.

복지 확대와 일회용품 규제 역시 합의 이슈에 속했다. ‘정부가 민간의 일회용품 사용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의제에 대해 진보 75%가 찬성했다. 중도와 보수도 각각 66%와 65%가 찬성했다.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해 복지 확대가 필수적이다’라는 의제 역시 진보(93%), 중도(83%), 보수(76%)로 찬성 여론이 강했다. 환경 규제 강화와 복지 확대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일정하게 형성돼 있다고 추론 가능하다.

다만 복지의 방법론에서는 선별복지 여론이 좀 더 높았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모두를 위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만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제에 찬성한 비율이 52%였다. 진보는 선별복지 찬성 44%, 반대 52%였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웹조사는 보편복지 정서가 과대대표되는 측면이 있다”라면서 “전화조사에서는 선별복지 지지가 다수”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선별복지 선호 여론이 더 강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 원장은 “진보의 복지론에 사회 전반적으로 비효율적,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합의 이슈로 분류된 항목의 특징은 사형제를 제외하곤 대체로 진보가 선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제라는 점이다. 진보 성향이 과대대표되는 경향이 있는 웹조사 방식의 특징을 감안해야겠지만 보수가 환경, 복지 같은 진보 의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한 기업 대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도 보수의 76%가 찬성함으로써 높은 합의 수준을 보였다.

반면 검찰 직접 수사권, 대일 협력, 노란봉투법, 편향 언론 정부 개입 등은 진영 간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대립 이슈’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 직접 수사권 축소는 진보, 보수가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이슈로서 진보 77%가 찬성했지만 보수는 36%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를 봤을 때는 검찰 수사권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이 57%로 절반을 넘었다.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제는 진보의 24%, 보수의 71%가 찬성했다.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제에 대해 진보의 73%가 찬성하고 20%가 반대했다. 보수는 33%가 찬성하고 59%가 반대했다. ‘정부는 편향된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제에 찬성한 진보는 26%였고, 보수는 61%가 찬성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대립 이슈들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전임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이 100% 입장을 달리하며 대립했고, 대일외교 노선에 관해서도 여야 간 극심한 갈등이 표출됐다. 노란봉투법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다. 윤 대통령은 역시 야권 주도로 통과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진영 간 대립이 첨예한 이슈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자기 진영의 의사를 관철시킨 셈이다.

정부·여당이 총선용 카드로 뽑아들었다고 평가받는 공매도 금지와 김포 서울 편입 이슈에 대한 여론은 미묘했다. 공매도 금지는 진영을 막론하고 찬성 여론이 높은 합의 이슈에 속했다. 야당이 공매도 금지를 총선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반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지 못하는 이유로 보인다. 김포 서울 편입의 경우 진보, 보수 양측으로부터 모두 환영받지 못했다. 진보의 83%가 반대했고, 보수에서도 반대 여론이 58%로 높았다.

특수목적고 폐지에 대한 의견은 진영 내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진보와 중도 모두 찬성 46%, 반대 44%로 나타났다. 보수 역시 찬성 39%, 반대 50%로 나타나 한쪽으로 크게 쏠리지 않았다. 특목고 이슈에 대한 입장이 진보, 보수라는 이념적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에 따라 나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떻게 조사했나?=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12일~15일, 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웹(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한국리서치 설문에 응하기로 미리 동의한 마스터샘플(지난해 11월 기준 86만여명)에서 지역·성·연령별 비례를 할당해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해 보정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며, 응답률은 4.4%다. 결과값은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정수로 표기했으므로 합이 100%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특별취재팀=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 부장, 배문규(데이터저널리즘팀)·심진용(스포츠부)·정대연(정치부)·권정혁(경제부)·문재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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