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②합의와 대립 사이…균형추인가

현안 26가지 찬반 ‘평균값 추세’

중도층, 탈이념·실용주의 강해

정당 영향력 적고 선택 폭 넓어

정책서 ‘개인 맞춤형 반응’ 나타나

여론 평균값서 ‘균형추’ 자리매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교차로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걷고 있다. 민주주의는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가 서로 다른 시민과 집단이 대립과 갈등, 경쟁과 타협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거대 양당이 극한 대립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는 다양하고 복잡해진 시민들의 선호와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사진 크게보기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교차로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걷고 있다. 민주주의는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가 서로 다른 시민과 집단이 대립과 갈등, 경쟁과 타협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거대 양당이 극한 대립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는 다양하고 복잡해진 시민들의 선호와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국회가 법률로 정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의견차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들이다. 진보, 보수로 대별되는 이념이 개인과 사회,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에 관한 추상적인 담론이라면, 각종 정책들은 훨씬 구체적이며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직접적이다. 그래서 이념을 총론, 개별 정책을 각론에 비유할 수 있다.
 경향신문 신년기획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2회차 주제는 한국 사회의 주요 정책 현안에 관한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여러 정책 현안에 대한 찬반을 묻고 결과를 풀이했다. 현안 각각에 관한 여론 지형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념 성향별 정책 선호도를 실증적으로 대비했다.
 대체로 ‘진보는 진보답게, 보수는 보수답게’ 답하는 경향이 강했다. 자신이 속한 이념 집단이 선호하는 의제에 찬성 비율이 높고, 상대 집단이 선호하는 의제에 반대 비율이 높은 것이다. 다만 사형제, 환경, 복지 등 일부는 기존에 알려진 이념 균열에서 벗어난 답변 양상이 나타났다.
 각종 현안에 관한 중도층 여론의 중심은 진보, 보수의 입장 사이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체적인 정책 추진 방향이 결정될 때 시민 여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중도는 진보, 보수 사이에서 일정한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중도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만큼 정책 선호에 있어서도 양가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현안별로 어떤 사안에 대해선 진보적인 정책 방향을 선호하고, 다른 사안에는 보수적인 정책 방향을 지지하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이념 구분 없이 합의의 정도가 높은 이슈, 이념에 따라 입장이 확연하게 갈리는 이슈의 분포도 확인됐다. 사형 집행 재개, 공매도 금지, 복지 확대, 미·중 균형외교, 일회용품 규제 등에 대해선 이념 관계없이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높았다. 반면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 과거사 문제 해결 없는 한·일관계 개선, 노란봉투법 등은 진영 간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송모씨(43)는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여당도 야당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거가 다가오면 정당 이름보다 후보의 됨됨이와 각종 공약들을 주로 살핀다. 송씨는 정당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한 판단도 자유롭게 한다. 그는 기업 발전과 경제 성장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주장에 반대한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업체 대표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란봉투법에 찬성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는 신중한 편이다. 야당의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 주장을 회의적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 현안에 관한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다. 진보·보수의 이념적 차이가 현실에선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차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를 주장하고,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며, 남북관계의 부침과 관계없이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진보라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과거사에 얽매이는 대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각종 규제를 혁파해야 하고, 에너지 수급 문제 등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보수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송씨 같은 중도층의 선호는 이렇게 ‘단순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는 통화에서 법인세 감면에 반대한다며 “국민보다 기업이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요새는 (물가 생각하면) 직장인들 월급도 다 적은데 법인세를 깎아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선 안 된다고 했다. “월급이 작긴 한데, 영세업체 꾸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최저임금(2024년 기준 시간당 9860원)이 적기는 하지만, 월급으로 치면 200만원은 넘어요. 급여가 오르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러면 자영업자들이 더 힘들어지고 일자리 구하기도 더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중도의 양가성…옆으로 누운 V자

송씨처럼 진보가 선호하는 정책, 보수가 선호하는 정책을 동시에 좋아하는 경우 상반된 태도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양가적’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중도의 특징으로 ‘양가성’에 주목해왔다. 경향신문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중도는 정책 현안 전반에서 진보·보수에 비해 양가적 태도가 높게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시민들에게 정치·경제·사회 등 정책 현안 관련 26가지 진술문을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진술문은 진보적 지향이 담긴 의제 14개, 보수적 의제 11개, 중립적 의제 1개로 구성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 대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보적 의제,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보수적 의제 등 각각의 진술문에 대해 ‘매우 동의한다’, ‘대체로 동의한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등 5가지 가운데 하나로 답하도록 했다.

진보·보수·중도 집단의 각 진술문에 대한 태도, 상대적인 차이 등을 보려면 데이터를 가공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개별 문항에 동의하는 정도에 따라 1~4점으로 점수를 차등 부여하고 집단별 평균값을 구했다. 평균값이 4점에 가까울수록 찬성, 1점에 가까울수록 반대 여론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2.5에 가까우면 찬반이 팽팽하다는 뜻이다.

도출된 평균값들을 그래프에 표시했다. 세로축에 26개 현안 의제를 나열했다. 보수적 의제를 위쪽에, 진보적 의제를 아래쪽에 배치했다. 중립적 의제로 분류한 공매도 이슈는 중간에 뒀다. 진보·보수·중도 집단 평균값들은 각각 일정한 추세를 나타냈다.

진보는 점들의 분포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세로축 위에 배치한 보수적 의제에서 반대 비율이 높고, 아래에 배치한 진보적 의제에서 찬성 비율이 높았다는 얘기다. 보수적 의제이지만 찬성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사형제 이슈를 제외하면 추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는 반대 모양이 나왔다. 진보에 비하면 추세가 덜 분명하지만,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향했다. 보수적 의제에 찬성 비율이 높고, 진보적 의제는 반대 비율이 높았다. 다만 복지 확대, 산재 기업 대표 처벌, 미·중 균형 외교에서 눈에 띄게 다른 응답 양상을 보였다. 진보적 의제이지만 보수에서도 찬성 응답이 많았다. 사회 전반적으로 합의 수준이 높은 이슈들이다. 이민자 차별 문제와 대기업 오너 사면, 일회용품 사용 규제 같은 이슈에서 대체로 진보적인 답변이 나온 것도 특기할 만하다.

중도는 옆으로 누운 ‘V자’ 형태다. 진보·보수 의제에 대한 찬성·반대 의견이 골고루 분포한다는 뜻이다. 사형제를 비롯해 재개발, 긴축재정, 여가부 폐지 등에서는 보수적 경향이, 최저임금 인상, 노란봉투법, 일회용품 규제,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 등에서는 진보적 경향이 좀 더 강했다. 중도가 진보와 보수에 비해 양가적인 태도가 더 강하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각 이념 추세에서 많이 벗어난 이슈는 점선으로 묶어 표시했다. 진보는 사형제, 보수는 복지 확대, 산재 기업 대표 처벌 강화, 미·중 균형 외교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이슈들은 전통적인 이념 구분과 달리 진영 간 입장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가부 폐지도 노란봉투법도 찬성

구체적으로 상속세와 법인세, 부동산 재개발, 노란봉투법, 최저임금 등의 이슈를 살펴보자. 이들 의제에서 ‘진보는 진보처럼, 보수는 보수처럼’ 답했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의제에 진보 응답자 64%가 반대했다. 반면 보수는 62%가 찬성했다. ‘기업에 대한 법인세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의제에는 진보가 16%만 찬성한 반면 보수는 44%가 찬성했다.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제에 대해 진보는 73%가 찬성한 반면 보수는 33%만 찬성했다.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 9860원은 너무 낮으므로 과감히 인상해야 한다’는 의제에 진보의 동의율은 70%에 달했지만, 보수는 42%에 그쳤다.

중도는 단순하지 않았다. 상속세 폐지·축소에 찬성하는 의견이 54%로 절반을 넘었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건축·재개발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제에도 60%가 동의했다. 그런 한편 노란봉투법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이슈에도 동의율이 각각 58%와 57%로 절반이 넘었다. ‘보수는 친기업·친개발, 진보는 친노동’이라는 통상의 이분법을 중도층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중도의 사안별 태도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의 분위기 및 추세와 연관지어 해석해볼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시장경제나 기업 관련 이슈는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진보는 지금까지 이념적·규범적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중도의 성향이 보수에 가깝게 나타났다면, 진보가 보인 태도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도에서 노란봉투법 찬성 여론이 높은 데 대해선 “한국을 스스로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노동인권 이슈도 사회가 전반적으로 중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대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슈에 대해 진보(93%)·중도(84%)뿐 아니라 보수 역시 찬성 여론이 76%로 높았다는 사실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탈이념·정당, 현실주의 균형추

전통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주제인 대북·외교 정책에서도 중도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보수적 의제에 중도층은 44%만 동의했다. 반대 여론이 50%로 더 많았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진보적 의제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52%로 찬성 43%보다 높았다.

신현기 가톨릭대 교수는 “중도층은 상대적으로 탈이념주의 혹은 실용주의가 강하고, 이념에 구애받기보다 자신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반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념이나 정당의 영향력이 작다 보니,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경향신문과 통화한 중도층 응답자들은 현안에 대한 판단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념이나 정당이 아닌 개인적 경험이나 필요를 들었다. 경기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김형근씨(41·가명)는 법인세 축소 정책에 대해 “부자감세”라고 단언하면서 “없는 사람들한테 세금 더 걷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북 지원에 관해선 “현물 지원, 의료 지원은 필요하다. 같은 사람인데, 인륜적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이민자·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는 강경보수에 가까웠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말에 그는 강하게 반대했다. 김씨는 “건설현장에서 보면 외국인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면서 “한국 사람은 일할 데가 없는데 외국인들이 수백만원씩 벌어서 집에 보낸다”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주부 김민정씨(49)도 자신을 중도로 분류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이민자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형근씨와 다른 결론이지만 그 역시 경험을 통해 그런 입장을 갖게 됐다. “우리집 아이가 경남 김해 쪽에서 자취하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그쪽 공단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 외모만 보고 ‘냄새난다’고 비하한다거나 하는 차별이 엄청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중도는 26개 정책 현안 전반에서 양가적인 선택을 했다. 다만 보수와 진보의 사이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여론 평균값으로 따졌을 때 23개 현안에서 중도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위치했다. 현안에 대한 여론에서도 중도는 일종의 균형추로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중도는 사형 집행 재개, 특목고 폐지, 공매도 금지 등 3개 이슈에서만 보수와 진보 사이라는 ‘자기 위치’를 벗어났다. 3개 이슈 모두 각 진영의 찬반 비율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찬성 비율로 따졌을 때, 사형 집행 재개는 중도-보수-진보, 특목고 폐지는 중도-진보-보수 순이었다. 공매도 금지도 중도-보수-진보 순으로 나타나 중도의 찬성 비율이 미세하나마 가장 높았다.

◇어떻게 조사했나?=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12일~15일, 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533명을 대상으로 웹(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한국리서치 설문에 응하기로 미리 동의한 마스터샘플(지난해 11월 기준 86만여명)에서 지역·성·연령별 비례를 할당해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해 보정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이며, 응답률은 4.4%다. 결과값은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반올림해 정수로 표기했으므로 합이 100%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특별취재팀=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 부장, 배문규(데이터저널리즘팀)·심진용(스포츠부)·정대연(정치부)·권정혁(경제부)·문재원(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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