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로 찢어 붙이고, 공룡선거구 만들고…선거구 획정위안 ‘불공정’ 논란

탁지영 기자

2개월여 동안 줄다리기 하다 원안으로 돌아갈 듯

생활문화권 고려하지 않은 채 구획된 선거구 많아

기형적인 획정안, 유권자에게 혼란 준다는 지적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전남, 전북 의원들이 의석 10석 사수와 전남 선거구 조정 촉구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2.27 박민규 선임기자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전남, 전북 의원들이 의석 10석 사수와 전남 선거구 조정 촉구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2.27 박민규 선임기자

여야의 4·10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 제출안이 최종안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거구별 의석수 증감을 놓고 2개월여 동안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원안으로 돌아갈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획정위 제출안을 살펴보면 행정구역을 기형적으로 조합하거나 생활문화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구획된 선거구가 적지 않다. 여야 유불리 셈법을 떠나 기형적인 획정안 자체가 유권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부천이 대표적 사례다. 획정위는 부천에서 한 석(4석 → 3석)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천 행정구역은 오정구, 원미구, 소사구 등 크게 가로로 삼등분 된다. 현행 선거구는 행정구역에 맞춰 지정됐다. 오정구는 부천정, 원미구 좌측 지역(상동, 신중동, 중동)은 부천을, 원미구 우측 지역(부천동, 심곡동)은 부천갑, 소사구는 부천병이다.

획정위는 부천 행정구역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거구를 구획했다. ①오정구 일부, 원미구 일부 ②오정구 일부, 원미구 일부, 소사구 일부 ③원미구 일부, 소사구 일부로 선거구를 나눴다. 같은 구인데도 선거구가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천 지역 국회의원들은 “지역 대표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행정구역과 생활 문화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경기 수원의 경우도 세류1동이 수원병에 편입돼 권선구라는 행정구역 안에 수원을, 수원병, 수원무라는 3개 선거구가 난립하게 됐다. 부산 북구는 지리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재단됐다. 북을의 만덕1동과 화명1동 사이 금정산이 있어 동 사이를 이동하려면 북갑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산을 기준으로 맞은편에 있는 지역끼리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둔 것이다.

21대 총선에서 여야가 특례 선거구로 합의했던 지역도 문제다. 공직선거법은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떼어내 다른 지역구에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을 선거구 획정의 원칙으로 삼는다. 여야는 지난 총선 당시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을과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을을 한시적으로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례 선거구로 합의했다.

이번 획정위 협상 과정에서 특례 선거구 합의가 불발되면서 강원 춘천이 갑·을로 나눠지고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속초가 한 선거구로 묶였다. 휴전선 접경지 전체가 하나의 선거구가 되는 ‘공룡 선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속초의 면적은 서울의 8배에 달한다. 지역구가 넓어질수록 지역 대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총선마다 선거구 획정에 논란이 이는 이유는 인구 편차가 최우선으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이번 획정위는 인구 편차 범위를 13만6600명 이상 27만3200명 이하로 설정했다.

인구 상·하한 기준에 맞추다 보니 주로 농·산·어촌 지역에서 기형적인 선거구가 탄생한다. 이번 획정위 제출안에 따르면 전남 영암·무안·신안은 갈갈이 찢어져 주변 지역구에 편입됐다. 전북 남원·임실·순창도 지역구가 해체됐다. 경기 북부 지역인 포천·연천·가평은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 또다른 공룡 선거구가 됐다.

21대 총선에선 전남 순천이 논란이 됐다. 순천시(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서 해룡면만 떼어내 순천·광양·곡성·구례을에 붙였기 때문이다.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법소원을 냈지만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기각했다. 이번 획정위는 순천시를 갑·을로 나누고 광양·곡성·구례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는 안을 제시했다.

여야는 본회의를 이틀 남겨둔 27일까지 선거구 획정 합의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소한 합의된 4개 특례지역만이라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역 문화와 교통, 생활문화와 정서, 지역 특수성이 모두 무시되는 공룡 선거구 획정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불공정한 획정위 안에 대해 수정안을 과감하게 제시하든가 아니면 획정위 안을 받든가 두 가지 중 하나로 빨리 입장 정하라”고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도 입장문에서 “국민의힘은 더 이상 유권자를 볼모로 정치적 이득만 취하려는 행태를 중단하고 조속한 선거구 획정안 통과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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