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제재 동참 요구에 고민 깊어지는 한국

정대연 기자

향후 정세 불확실…정부, 모든 가능성 열어둬

제재 동참 땐 진출 기업들 피해 현실화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러시아 제재 동참 요청을 두고 정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경제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섣불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제재에 동참하는 가운데 이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향후 사태 진행 상황을 보면서 제재 동참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러시아 제재에 관해) 미국 등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해오고 있다”며 “다만 아직 향후 우크라이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국민들이 안정적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서 관련국들과 협의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은 청와대의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국이 자국의 다른 동맹국들과 연대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수출 통제, 금융 제재 등에 적극 동참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한국은 러시아와의 관계, 지정학적 위치 등 이유로 제재에 선뜻 동참하기가 곤란하다. 문 대통령이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러시아를 규탄하거나 제재 동참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도 한국이 처한 쉽지 않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제재 동참시 당장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진출해 있는 주요 기업들의 피해가 현실화할 수 있다. 러시아가 보복으로 핵심 원자재 수출을 차단하면 반도체, 배터리 등 산업에 타격이 예상된다. 게다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제재 동참은 한반도 평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전날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앞선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 러시아 등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국가들”이라며 “이들 국가들 간 협력이 긴밀하게 유지되는 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주요 국제기구 협의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계속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에 돌입할 경우 미국의 요구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미국은 지난 12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신속하고 단합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제재 동참 여부는 동참국 확대 및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면전으로의 확대가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전개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각국의 대응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미국의 동맹국들과 보조를 맞추더라도 러시아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참여 수위를 깊이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이나 유럽연합(EU) 액화천연가스(LNG) 지원 등 상대적으로 참여가 쉬운 선택지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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