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혈액 응고’ 비타민 K 등 생산…생명공학산업 이끄는 ‘세포공장’

김응빈 교수

대장균 이야기 (상)

대장균은 가장 많이 연구된 생명체의 하나로, 1억2000만년 전쯤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균 가운데 ‘O-157:H7’은 1982년 미국에서 발생한 햄버거 관련 집단 식중독의 원인 규명 과정에서 알게 됐다. 당시 환자의 혈변에서 분리된 이 병원균은 이후 햄버거 패티에서 자주 검출됐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대장균 O-157:H7을 활용한 그래픽.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대장균은 가장 많이 연구된 생명체의 하나로, 1억2000만년 전쯤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균 가운데 ‘O-157:H7’은 1982년 미국에서 발생한 햄버거 관련 집단 식중독의 원인 규명 과정에서 알게 됐다. 당시 환자의 혈변에서 분리된 이 병원균은 이후 햄버거 패티에서 자주 검출됐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대장균 O-157:H7을 활용한 그래픽.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전체 장내 세균의 1% 못 미쳐
연구가 가장 많이 된 ‘생명체’
자연 서식지는 온혈동물 창자
당뇨병 치료제 대량 생산 기여
배양 가능해 청결 가늠 지표로

번듯하게 동식물의 축에 끼지 못하는 생물을 몽땅 미생물이라고 한다. 대부분 너무 작아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 없어 보이는 것들 가운데 일부가 불쑥불쑥 자기 존재를 과시하곤 한다. 그것도 ‘감염병’이라는 아주 고약한 꼬락서니로 말이다. 최근에는 ‘병원성’ 대장균이 코로나19 고통으로 가뜩이나 힘든 우리에게 발길질을 했다.

어림잡아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지구에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대장균은 인간의 장속에 자리를 잡고 살아왔다. 하지만 자칭 지혜로운 우리(학명을 이루는 ‘호모’와 ‘사피엔스’는 각각 ‘사람’과 ‘지혜로운’이라는 뜻임)가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지는 불과 135년밖에 안 된다.

1885년 독일의 의사 테오도어 에셰리히(Theodor Escherich·1857~1911)가 아기의 똥에서 대장균을 최초로 분리해냈다. 이후 첫 발견자와 그 분리 장소를 기리기 위해 그의 성(姓)과 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장’의 영어 ‘콜론(colon)’을 합쳐 ‘Escherichia coli’라고 명명했다. 이 라틴어 학명을 한글로 발음하면 ‘에스케리키아 콜리’ 정도이다.

■대장균에 얽힌 오해와 진실

이름 때문에 대장균이 ‘대장에 많은 세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대장균은 전체 장내 세균의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그리고 식중독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대장균=병원균’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식중독 하나로 이렇게 일반화하는 건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이다. 이는 일부 몰상식한 한국 관광객을 보고 모든 한국인에게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주하는 대장균에게 인간의 장은 ‘즐거운 나의 집’이다. 당연히 이들도 좋은 집, 즉 건강한 장을 원한다. 실제로 이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도 한다. 우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음식물과 함께 들어오는 잡균들에게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보호 기능은 기본이다. 이들은 비타민 K와 B7 등도 생산한다. 비타민 K는 상처에서 혈액 응고에 꼭 필요하고, 비타민 B7은 혈액 순환을 좋게 하여 탈모 예방에 도움을 준다. 숙식 제공에 대한 보답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생태학 용어로 말하자면, 대장균과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이다.

대장균은 연구가 가장 많이 된 생명체이다. 이를 통해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의 기본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장균에서 사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사실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대장균은 원조 ‘세포공장’으로서 생명공학 산업을 이끄는 역군이다. 세포공장이란 정밀 화합물과 의약품을 비롯하여 각종 유용 물질을 생산하도록 설계한 미생물을 말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발효 등과 같이 미생물을 이용해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왔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미생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사람 인슐린 유전자를 주입한 대장균을 제작하여 당뇨병 치료제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적절한 생장 조건만 유지해주면, 이 재조합 대장균은 인슐린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세포공장의 탄생이다. 최근에는 한층 더 발달한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하여, 마치 종이 공작을 하듯이 미생물 유전자(DNA)를 다루어 여러 가지 맞춤형 세포공장을 제작, 가동하고 있다.

■대장균의 족보

족보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의 기록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몸(세포) 안에 족보가 들어 있다. 바로 유전자다. 생명체의 특성을 결정하는 기본 정보인 유전자는 이전 세대에게서 물려받는다. 그런데 전수 과정에서 유전자가 조금씩 변한다. 흔히 자식이 부모를 닮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부모 기준에서 보면 달라진 거다. 유전정보의 변화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대장균의 자연 서식지는 포유류와 조류 같은 온혈동물의 창자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장균은 1억2000만년 전쯤 처음 나타난 것 같다. 이때부터 대장균은 다양한 온혈동물과 긴밀한 공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동물마다 각기 다른 장내 환경은 이후 대장균의 자손 번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주어진 조건에 더 적합한 유전자 변이를 지닌 대장균이 번성해갔다. 사는 곳에 따라 대장균들이 서로 점점 더 달라져간 것이다.

2019년 총 6220개의 대장균 유전체를 심도 있게 분석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비록 대장균이라는 단일 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전체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대장균들은 서식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전자를 잃기도 얻기도 했다. 저마다의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긴 세월이 DNA에 남긴 흔적이다. 특히 병원성 대장균들은 상대적으로 유전자 수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숙주에게 병을 일으키려면 추가로 유전자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대장균은 동물의 장을 떠나서도 비교적 잘 살고, 실험실에서 배양하기도 쉽다. 이런 이유로 대장균은 청결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대장균이 검출된다는 것은 시료가 온혈동물의 분변 또는 매개체로 오염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검출된 대장균을 대상으로 간단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면, 문제의 세균이 유래한 숙주(사람인지 포유동물인지 아니면 조류인지)와 병원성 여부를 알 수 있다.

■대장균 구별하기

소 창자에 있고 사람 장염 유발
대장균 O-157:H7 속 베로 독소
독성 강해 대장 손상 출혈 발생
콩팥 공격 ‘신장부전’으로 악화
육류 전용 칼·도마 써 감염 예방

대장균이 곧 식중독균이라는 오해가 풀렸기를 기대하며, 고약한 대장균 패거리를 소개한다. 주로 장염을 일으키는 이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얼마 전 큰 난동을 부렸다. 일명 ‘햄버거병’이라는 식중독을 일으킨 주범, ‘대장균 O-157:H7’이다. 이름 뒤에 붙은 꼬리표가 이 불한당의 정체를 알려준다.

대장균은 ‘혈청형’으로 구별한다. 혈청형이란 미생물 세포 표면이나 편모 따위에 존재하는 항원에 따라 미생물을 분류하는 방법이다. 세포 표면과 편모에 있는 항원은 보통 ‘O’와 ‘H’로 각각 표기한다. 습관적으로 영어 알파벳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은 각각 ‘없다’와 ‘얇은 막’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ohne’와 ‘hauch’의 첫 글자이다.

세균은 꼬리처럼 보이는 편모를 휘저어 움직인다. 대장균도 여러 개의 편모를 가지고 있다. 편모 유무에 따라 세균의 활동성이 큰 차이를 보인다. 편모가 많으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반대로 편모가 없으면 정적인 세균이 된다. 이런 운동성의 차이는 세균이 고체 배지 위에서 자랄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운동성이 큰 세균은 증식하면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그 결과 세균 집단이 배지 표면을 얇고 넓게 덮는 막(hauch)을 이룬다. 반면 편모가 없는 세균은 같은 자리에서 계속 증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고 도톰한 동그라미를 형성한다. 달리 말해, 박막이 ‘없다(ohne)’. 이처럼 대조적인 성장 양상이 편모 항원과 세포 표면 항원을 각각 ‘H’와 ‘O’로 표기하게 된 연유이다.

■‘독한 놈’ 등장

햄버거병 유발 오명 O-157:H7
어떻게 독소 유전자 갖게 됐을까

대장균 O-157:H7과의 첫 공식 조우는 1982년 미국에서 발생한 햄버거 관련 집단 식중독의 원인 규명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환자의 혈변에서 분리된 이 병원균은 그 이후로 자주 햄버거 패티에서 검출되었다. 피설사를 동반하는 대장균 감염은 1970년대부터 보고되었지만, 이 새로운 변종의 병원성은 차원이 달랐다. 이렇게 해서 O-157:H7은 햄버거에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씌우며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소고기가 O-157:H7의 주된 감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육 소의 2~3% 정도가 이 식중독균을 창자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다수 병원성 미생물과 마찬가지로 이 대장균도 소에서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도축과 육류 가공 과정에서 소고기에 대장균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사육 및 도축 시설에서 나오는 하수는 또 다른 오염원이다. 오염된 물을 통해 대장균이 잎채소를 비롯한 농작물 또는 식수를 거쳐 인체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심지어 물놀이 중에 감염된 사례도 있다.

O-157:H7은 ‘베로 독소’라는 내독소를 지니고 있다. 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외독소와 달리 내독소는 세포 표면에 박혀 있다. 떨어져 나온 베로 독소는 세포 독성이 매우 강해 대장 벽을 손상시켜 출혈을 일으킨다. 환자가 혈변을 보게 되는 이유다. O-157:H7에 감염되고 평균 사나흘이 지나면 복통과 설사, 발열이 생긴다. 다행히 건강한 성인은 별다른 치료 없이도 수분만 제대로 보충하면 열흘 정도면 회복한다. 그러나 미취학 또래 아동과 노년층은 이 대장균에 매우 취약하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이 지속되다 이 병원균이 혈액으로 진출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백혈구는 당연히 침입자를 파괴한다. 문제는 O-157:H7 세균 자체는 사멸되지만 독소가 혈액으로 유출된다는 사실이다. 베로 독소는 특히 콩팥에 피해를 입힌다. 이렇게 되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고 종종 신장부전까지 나타나는 합병증,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 발병한다. 안타깝게도 감염된 어린아이의 5~10% 정도가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고 한다.

■ 싸우지 않고 이기기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유명한 이 경구는 병원성 미생물과의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장균은 비교적 열에 약하다. 직접 노출된다면 섭씨 70도 정도에서 죽는다. 이런 사실에 병원성 대장균 감염 경로에 대한 지식을 더하면 효과적인 감염 예방책을 세울 수 있다. 핵심은 주방 위생 관리이다.

올바른 손씻기 및 식재료 세척과 함께 조리 도구의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육류 전용 칼과 도마의 사용도 감염 예방에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육류는 70도 이상 온도에서 조리하여 완전히 익혀 먹는 게 중요하다. 특히 갈거나 다진 고기를 요리할 때에는 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음식을 속까지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안쪽으로 섞여 들어간 대장균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2500여년 전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병원성 대장균과의 대결에서 우리 하기에 따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다. 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증세가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스스로 판단으로 지사제 같은 상비약으로 버티면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부득이하게 전쟁을 하게 될 경우에는 속전속결하라는 손자의 말이 떠오르다, 불현듯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대장균 O-157:H7은 어떻게 해서 독소 유전자를 갖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무작위 유전자 변이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편’에서 그 실체를 파헤쳐보자.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8)‘혈액 응고’ 비타민 K 등 생산…생명공학산업 이끄는 ‘세포공장’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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