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무성생식의 세균들, ‘수평 소통’으로 유전자 주고받아 다양성 확보

김응빈 교수

대장균 이야기 (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대장균 O-157의 독소 유전자
‘시겔라’에서 들어온 게 확실
생물학적 근묵자흑의 사례

대장균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상편 2020년 7월24일자 14면 참조). 건강 도우미와 산업 역군에서부터 장출혈성 병원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런 극과 극의 차이는 유전정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나쁜 대장균은 착한 대장균에 비해 적어도 1000개 이상 더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병원성과 관련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병원성 유전자들이 무작위로 퍼져있지 않고,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병원성 유전자 섬(pathogenicity island)’이라고 부르는 이들 유전자 무리는 주변 유전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흡사 클래식 선율 중간중간에 재즈 리듬이 들리는 격이다. 다시 말해, 세포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작위 돌연변이로 생겨나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이고 이질적이다. 세포 안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밖에서 들어왔다는 얘기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답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다.

글자대로 풀면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 뜻인 이 사자성어는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병원성 대장균은 ‘생물학적 근묵자흑’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온혈동물의 창자에서 1억년 넘게 살아오면서 대장균은 여러 다른 장내 세균들과 조우했다. 이 가운데에는 장티푸스와 치명적 이질을 각각 일으키는 ‘살모넬라(Salmonella)’와 ‘시겔라(Shigella)’처럼 아주 고약한 병원균도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에 근거해서, 대장균 전체 유전자의 5분의 1가량이 다른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우리의 대장 벽을 손상시켜 출혈을 일으키는 대장균 O-157의 독소 유전자는 시겔라에서 들어온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왔을까?

■세균의 소통 비법

세포 분열만 하는 수직 생식은
개체수는 엄청나게 늘지만
환경 변화 적응에 매우 취약

생물학적으로 생명 현상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고, 그 바탕에는 ‘유전자’라는 정보가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생명체의 고유 특성은 유전정보의 표현이고, 증식(자손 생산)은 지속적인 유전정보 전달의 수단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암수가 있고,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전달하며 세대를 이어간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에 이를 ‘수직 유전자 전달’이라고 부른다. 단세포 생물이면서 무성생식을 하는 세균에게는 세포 분열 자체가 번식이고 수직 유전자 전달이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짝짓기를 통해 유성생식에 성공하려면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반면 혼자서 분열만 하면 되는 무성생식은 훨씬 더 쉽고 간편하다. 세균 한 마리가 분열하여 둘이 되고, 다시 분열할 때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런데 거듭제곱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세균 수와는 달리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그대로이다. 이대로라면 환경 변화 적응에 매우 취약해진다. 하지만 세균에게는 그들만의 은밀한 비법이 있다. 다른 세균들과 유전자를 마구 주고받는 ‘수평 유전자 전달’이다. 이 덕분에 이들은 엄청난 유전적 다양성을 얻을 수 있다. 지난 1억년 동안 대장균은 200번 이상의 이러한 소통을 해왔다

■수평 유전자 전달 방식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8)무성생식의 세균들, ‘수평 소통’으로 유전자 주고받아 다양성 확보

온혈동물 창자 속 다른 세포와
‘수평 유전자 교환’ 전략으로
1억년 넘게 살아남은 대장균

세균이 죽어서 그 세포가 파괴되면 DNA가 외부 환경에 노출된다. 감싸고 있던 세포벽과 세포막이 벗겨졌다는 의미에서 이를 ‘벌거벗은(naked) DNA’라고 부른다. 그런데 DNA라는 물질이 생각보다 견고해서 풍파에 부서지면서도 그 조각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잔존한다. 이렇게 나뒹구는 헐벗은 DNA를 종종 주변에 있는 다른 세균이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는데, 세균은 죽어서 DNA를 남기는 셈이다. 아무리 작은 DNA 조각이라도 산소 같은 기체처럼 단순 확산으로 온전한 세포 안으로 무사통과할 수는 없다. 외부 DNA를 받아들이려면 해당 세균의 세포벽과 세포막에 모종의 변화가 생겨야 한다. 보통 이런 수용 능력은 환경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곤 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려움 속에 혁신이 이루어지는 게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코로나19 때문에 더 이상 듣기조차 싫은 바이러스는 모든 생명체를 감염한다. 세균도 피해갈 수 없다. 침입한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체계를 강탈하여 증식한다. 바이러스에게 증식이란, 유전물질과 이를 담을 단백질 껍데기를 따로 양산한 다음 조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산산이 부서진 숙주의 DNA 조각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담아 조립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이런 불량품도 껍데기 속 DNA 파편을 다음 세균에게 주입까지는 한다. 이 운수 좋은 세균은 바이러스 감염 대신에 다른 세균의 DNA 일부를 얻게 된다.

세 번째 전달 방식은, 비유컨대 오지랖 넓은 특정 세균이 주도한다. 주변에서 소통할 만한 세균을 발견하면 끌어당겨 밀착시킨다. 그런 다음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듯 통로를 만든다. 말하자면, 서로 붙은 상태에서 자기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 세균의 세포막과 세포벽에 구멍을 뚫는다는 얘기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지만, 전문 효소를 사용하여 놀랍도록 빠르고 정교하게 공사를 마치고, 일련의 유전자를 전달한다. 이들 유전자가 모두 다 넘어가면, 받은 세균도 그만큼 오지랖이 넓어진다.

■발칙한 상상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으론
다양성·창의성 키우는 것 한계

유전자는 세대를 거쳐 전수되면서 각 생명체에게 생물학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본 정보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정체성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도 결국 정보의 전달이다. 교육 하면 학교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학교 교육은 주로 일방적인 가르침이다. 배운 대로 시험을 보고 정답을 맞히는 ‘수직 생각 전달’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세대에 반드시 전해야 하는 것들을 가르치는 데 아주 긴요한 교육 방법이다. 물론 학생들의 흥미와 능력, 의욕 등을 다 반영하지 못하고 주로 일방적으로 선정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만으로는 사고의 다양성이나 창의성을 키우기 어렵다. 세균들이 세포 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만으로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수평 생각 전달’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의 배움이 학교에서 받는 정규교육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또래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가 무시무시한 복병으로 등장했다. 각종 인터넷 공간에는 별의별 정보들이 차고 넘친다. 일상에서 우리는 이런 파편적인 정보들을 보통은 무덤덤하게 흘려보낸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던 것에 눈이 가고 귀가 번뜩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요즘에는 ‘면역’이라고 하면 온통 관심이 쏠리고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관련 정보들이 쏙쏙 들어온다. 스트레스를 받아 주변에 있는 ‘벌거벗은 DNA’를 받아들일 능력이 생긴 세균처럼 말이다.

사람을 세균에 빗대는 게 억지스럽고 불편하다고 일침을 가하는 독자가 있을 줄 안다. 양해를 구하며 이번에는 예술을 바이러스에 빗대는 발칙한 상상을 펼쳐본다. 예술 작품은 이해를 통한 가르침과는 차원이 다른 깨달음 또는 감동을 주곤 한다. 가슴 뭉클해지는 그 벅찬 울림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흔히 ‘매료(魅了)’되었다고 말한다. 한자 ‘매(魅)’는 ‘도깨비’를 뜻한다. 도깨비에 홀린 듯,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가 매료이다. 그 이유를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 작품이 그냥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또한 예술 작품에 대한 개인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다. 바이러스의 숙주 특이성처럼 예술 작품은 감상자 특이성이 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유전자 전달을 매개하듯 예술 작품은 생각 전달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절친한 철학자의 지적 자극과 도움이 컸다. 30년 넘게 실험실에서 박테리아와 깊은 교제를 해오다가, 10년 전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얘기가 통해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 담소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런데 만남이 계속되면서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기 일쑤였다. 서로 다른 공부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던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만남이 깊어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가 공부하는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한 소통의 말솜씨가 늘면서, 시나브로 사고(思考)의 융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지랖 넓은 세균들이 유전자를 주고받듯이 말이다.

■사고 면역

‘정보의 바다’ 인터넷 세상에선
열린 소통과 사고 면역 겸비해야

최근 30년간 인류가 새롭게 접하게 된 정보의 양은 인류 문명사의 시작부터 1990년대까지 알고 있던 정보량보다도 많다고 한다. 게다가 20세기 후반부터 개인 컴퓨터와 인터넷, 각종 스마트 기기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이제는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무진장한 정보 교류가 일상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직보다는 수평 생각 전달의 영향력이 나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방에 난무하는 정보를 무작정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세균에게 배울 점이 있다.

만약 침입한 바이러스 DNA를 방치한다면 그 세균은 곧 죽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외부 DNA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유지하는 데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세균은 이를 방지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흔히 유전자가위로 비유되는 ‘제한효소’와 ‘크리스퍼(CRISPR)’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외래 DNA의 특정 부위를 식별하고 절단하여 외래 DNA를 제거하는 세균의 자기방어 시스템이다. 우리의 면역체계와 비슷하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함께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적 면역에 더해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 ‘사고 면역’을 길러야 한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8)무성생식의 세균들, ‘수평 소통’으로 유전자 주고받아 다양성 확보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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