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5) 고대 코뿔소 ‘엘라스모테리움’

체코 Utsi 박물관에서 엘라스모테리움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 뿔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출처 | 체코 Utsi 박물관

체코 Utsi 박물관에서 엘라스모테리움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 뿔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출처 | 체코 Utsi 박물관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깔때기 모양의 귀가 귀엽고 눈은 얼굴 양옆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귀엽고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불쌍한 포유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야생에서는 천적이 없는 동물이다. 뿔이 있고, 피부는 두껍고 딱딱하며 코끼리 다음으로 큰 포유류인 바로 코뿔소다.

말목(目)에 속하는 코뿔소과(科)에는 4속(屬) 5종(種)이 있다.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검은코뿔소, 흰코뿔소, 수마트라코뿔소가 그것. 뿔이 하나인 인도코뿔소와 자바코뿔소가 코뿔소속에 속하고, 뿔이 두 개인 나머지 코뿔소들은 각각 종명과 같은 이름의 속에 홀로 속해 있다. 코뿔소는 공통적으로 시각은 좋지 않으나 청각은 매우 예민하고 후각이 발달했다.

다섯 종 가운데 흰코뿔소만 다른 특징이 있다. 다른 코뿔소들이 나뭇잎, 과일, 풀을 닥치는 대로 먹는 데 반해 흰코뿔소는 풀만을 주식으로 한다. 또 흰코뿔소를 제외한 나머지 코뿔소들은 새끼 때만 어미와 함께 지내고 후에는 단독 생활을 한다. 감히 덤빌 동물이 없으니 굳이 무리 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이도 풍부하고 포식자도 없다.

그런데 희한하다. 야생에는 천적이 없는데 자바코뿔소, 검은코뿔소, 수마트라코뿔소는 멸종위기 위급종이며, 나머지 인도코뿔소와 흰코뿔소 역시 멸종위기 취약종이다. 심지어 흰코뿔소의 두 아종 가운데 하나인 북부흰코뿔소는 모녀 사이인 암컷 두 마리만 남아 있다. 2018년에 45세 나이로 죽은 마지막 수컷의 정액이 남아 있어서 멸종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을 뿐이다.

엘라스토테리움 골격 화석. 뿔이 달려 있었을 높이 15㎝, 둘레 30㎝에 달하는 거대한 기저부 돔구조가 보인다.

엘라스토테리움 골격 화석. 뿔이 달려 있었을 높이 15㎝, 둘레 30㎝에 달하는 거대한 기저부 돔구조가 보인다.

코뿔소는 왜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이 코뿔소의 뿔을 정력제로 탐내기 때문이다. 코뿔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코뿔소를 잡아서 뿔을 잘라낸 다음에 방사한다. 사람만 이러는 게 아니다. 코뿔소도 스스로 뿔을 줄이고 있다.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1886년부터 2018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촬영한 야생 코뿔소 사진을 분석했더니 시간이 갈수록 코뿔소 뿔이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코뿔소만의 일이 아니다. 코끼리의 상아, 뿔양의 뿔, 코뿔소의 뿔이 최근 100년 사이에 없어지든지 작아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아프리카코끼리 암컷 가운데 33%는 상아 없이 태어난다. 스리랑카 아시아코끼리 수컷 가운데 95%는 상아가 없다. 캐나다 앨버타주 큰뿔야생양 뿔 크기는 최근 20년 동안 20%나 작아졌다.

코끼리는 상아를 이용해 땅을 파거나 물건을 들어올리고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뿔양은 대립과 방어뿐만 아니라 암컷에게 잘 보이려 하는 데 뿔을 사용한다. 코뿔소는 뿔로 먹이를 찾거나 적을 막아내는 식으로 다양한 곳에 사용한다. 상아와 뿔은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인데, 인간의 탐욕에 의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크고 멋진 뿔과 상아를 가진 동물은 사냥당하면서 후손을 남기기 어려우니 뿔과 상아가 작거나 없는 쪽으로 표준분포곡선이 움직인 결과다.

250만년 전 현대의 코뿔소와 갈라져
몸집은 훨씬 커 길이 6m·무게 4~5톤
거대한 초식동물은 사냥감되며 멸종

생존한 현생 코뿔소도 멸종위기 직면
인간들이 정력제로 뿔을 탐내기 때문
스스로도 뿔 때문에 죽는 것 아는지
최근 100년간 뿔 크기는 점점 작아져

엘라스모테리움의 골격 모식도. 거대한 뿔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근육이 등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엘라스모테리움의 골격 모식도. 거대한 뿔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근육이 등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고대 코뿔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807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전 회장인 예카테리나 다시코바 공주가 ‘자연사 및 희귀 표본 캐비닛’을 모스크바 대학에 기증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어떤 동물의 소구치(작은 어금니)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엘라스모테리움(Elasmotherium)이라는 코뿔소가 세상에 소개되었다. 이 이름은 치아의 법랑질을 뜻하는 엘라스모스와 포유류를 뜻하는 테리움에서 유래했다.

엘라스모테리움의 머리는 아주 낮은 곳까지 닿을 수 있는 구조다. 앞니와 송곳니는 없는데 소구치와 대구치(큰 어금니)는 말 목의 다른 동물보다 훨씬 높은 치관(잇몸에 감추어져 있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 법랑질로 둘러싸여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엘사스모테리움은 풀을 먹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라스모테리움은 현대 코뿔소와는 4700만~3500만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섰으며 260만년 전에는 엘라스모테리움속으로 독립하였다. 엘라스모테리움도 치아와 턱, 두개골의 미세한 차이로 여러 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엘라스모테리움은 250만년 전 동유럽에 도착했다.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2~3도 높던 시절이 끝나고 다시 추워진 시기다. 이때 남극 대륙은 숲이 사라지고 빙하로 덮였으며 북극 바다가 얼었다. 열대우림은 적도 부근에만 좁게 형성되었고, 북반구의 대부분은 침엽수림과 툰드라가 차지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건조한 사바나 또는 사막이 나타났으며 초원은 남극을 제외한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이때가 엘라스모테리움의 전성기였다.

프랑스 루피냑 동굴 벽화에 나타난 고대 코뿔소 ‘엘라스모테리움’.  출처 | 논문집 Cranium 22, 1 (2005)

프랑스 루피냑 동굴 벽화에 나타난 고대 코뿔소 ‘엘라스모테리움’. 출처 | 논문집 Cranium 22, 1 (2005)

엘라스모테리움은 현대 코뿔소보다 훨씬 컸다. 길이가 최대 6m, 어깨 높이가 약 2.5m, 몸무게는 최대 4~5t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현대 코뿔소는 각각 2.5~4m, 1.6~1.8m, 0.8~2.3t). 요즘 코끼리 크기였다고 보면 된다.

비교적 짧고 뭉툭한 현대 코뿔소와 달리 엘라스모테리움은 달리기에 적합한 긴 다리를 가졌다. 말과 같은 걸음걸이를 하는 훨씬 더 활동적인 동물이었을 것이다(물론 커다란 몸집 때문에 빨리 오래 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략 코끼리와 같은 정도로 이동했다고 보면 된다). 몸에 털이 거의 없는 현대 코뿔소와 달리 엘라스모테리움은 두꺼운 털이 몸을 덮고 있었는데, 이는 추워진 그 당시 지구 환경에 잘 적응했음을 알려준다.

요즘 야생 코뿔소는 보호를 위해 뿔을 잘라서 소각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뿔을 가지고 있는 코뿔소를 볼 수 없지만 가만히 둔다면 55㎝까지도 자란다. 그렇다면 엘라스모테리움의 뿔은 얼마나 컸을까?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엘라스모테리움의 뿔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두개골에 남아 있는 뿔이 달려 있었을 기저부의 크기와 모양으로 뿔의 크기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마에 있는 기저부는 높이 15㎝, 지름 30㎝ 돔 모양으로 솟아나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엘라스모테리움을 돔이마코뿔소 또는 돔이마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여기에 뿔이 달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름 30㎝의 기저부에서 자라는 뿔이라면 밑동 둘레가 90㎝가 넘는다. 기저부의 크기와 돔 주변의 표면에 남은 혈관의 크기를 근거로 뿔이 최대 2m까지 자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등쪽에 커다란 근육 덩어리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척추 구조는 크기 추정을 뒷받침했다.

화석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추정을 할까? 엘라스모테리움은 인류와 동시대를 살았다. 최근에는 2만9000년 전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게 거대하면서도 유니크한 모습을 한 동물이라면 인류의 기록에 남지 않았을까? 엘라스모테리움에 뿔이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은 엘라스모테리움을 유니콘으로 부르곤 했다. 고대 인류에게도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랬다. 그림이 남아 있다.

프랑스 루피냑 동굴에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자연을 묘사한 미술 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고대 코뿔소도 두 종류 그려져 있다. 2005년 고생물학 전문 학술지 ‘크라니움’에 실린 논문 ‘화석 코뿔소 엘라스모테리움에 관하여’의 저자들은 이 가운데 뿔이 두 개 달린 것은 털코뿔소로 해석했다. 털코뿔소는 여러 동굴 벽화에서 발견되며 한반도에도 살았다. 논문의 저자들은 다른 하나를 엘라스모테리움으로 해석했다. 그 하나에 두개골 이마 부분에 남아 있는 기저부의 크기에 따라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의 뿔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루피냑 동굴벽화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 엘라스모테리움의 지리적 한계는 화석이 발굴된 소련과 중국으로 한정했었기 때문이다. 가장 연구가 많이 된 엘라스모테리움의 학명은 엘라스모테리움 시비리쿰이다. 즉 시베리안 엘라스모테리움이라는 뜻이다. 19세기 초 시베리아의 경계는 볼가와 우랄 지역 왼쪽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프랑스 동굴 벽화의 그림을 엘라스모테리움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억측에 가까웠다. 한편 유니콘 전설이 곳곳에 남았다는 것은 엘라스모테리움의 분포가 넓었다는 간접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천만~수억년 전에 살았던 공룡들도 자신의 특징을 화석으로 보여주었다. 트리케라톱스의 화려한 목둘레 장식, 그리고 스테고사우루스의 등판처럼 말이다. 그런데 불과 수만년 전의 엘라스모테리움은 왜 뿔을 우리에게 화석으로 보여주지 못할까?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트리케라톱스와 스테고사우루스의 장식인 프릴은 뼈로 되어 있어서 다른 골격이 화석으로 남을 때 함께 남지만 코뿔소의 뿔은 뼈가 아니라 남지 않았다.

다른 코뿔소처럼 엘라스모테리움의 뿔 역시 케라틴 성분일 것이다. 케라틴은 단백질이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피부조직이 단단하게 각화된 것이다. 단백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피부도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따라서 불과 몇만년 전의 엘라스모테리움 뿔 역시 화석으로 남지 않은 것이다.

엘라스모테리움은 대부분 20만년 전에 사라졌지만 서부 시베리아 평원에서는 3만년 전까지도 존재했다. 아주 최근이다. 그러니까 엘라스모테리움은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멸종 사건의 범인으로 두 인류를 지목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실제로 5만년 전 시베리아 동굴에는 잡아서 옮긴 엘라스모테리움의 유골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왜 엘라스모테리움을 사냥했을까? 설마 정력제로 뿔을 노렸을 리는 만무하다. 먹고살기 위해 사냥했을 것이다. 그들은 엘라스모테리움을 사냥한 대신 그들을 예술로 남겨놓았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엘라스모테리움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엘라스모테리움은 빙하기 때 광활한 초원에서 풀을 먹고 지냈다. 부드러운 입술로 풀을 뜯고 굵고 단단한 어금니로 풀을 으깨 먹었다. 풀을 먹을 때 함께 들어온 모래가 치아를 닳게 해도 괜찮을 만큼 치관은 충분히 높았다. 하지만 기후가 바뀌고 초원이 좁아지자 풀이 이끼로 대체되었다. 다른 코뿔소들은 남쪽으로 떠났다. 풀만 먹던 식성을 바꿔서 나뭇잎도 먹고 과일도 먹는 동물이 되었다. 하지만 엘라스모테리움은 풀만 고집했다.

마침 엘라스모테리움 거주지에는 인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몸무게 45㎏이 넘는 포유류를 멸종시켰다. 엘라스모테리움 역시 인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필자 이정모

[멸종열전]케라틴 성분의 뿔, 화석 없지만 구석기 벽화로 최대 2m 추정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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