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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부문 - 모글리 신드롬 - ‘가능성’이라 불리는 아이들
1. 모글리 신드롬“돌이 지난 딸아이가/ 요즘 열심히 말놀이 중이다./ 나는 귀에 달린 많은 손가락으로/ 그 연한 말을 만져본다./ (중략) 발음이 너무 설익어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억양의 음악이 어찌나 탄력있고 흥겨운지 듣고 또 들으며/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비밀스러운 문법을/ 새로이 익힌다.”- 김기택, ‘말랑말랑한 말들을’ 부분, <사무원>, 1999늑대소년 모글리가 배우고 싶었던 인간의 언어란 인간의 말, 그 자체였지 인간들의 기호표현이나 사유체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모글리는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늑대’+‘소년’에서 ‘늑대’를 버려야 했다. 그러나 ‘소년 모글리’를 택하는 일이란, 길러준 ‘젖’을 먼저 버려야만 한다. 자신에게 젖을 물려준 늑대들의 유토피아를 버리고, 인간들의 상징질서 속으로 편입되어야만 모글리는 다시 ‘소년’으로 현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늑대+소년’은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늑대소년에서 ‘늑대’를 빼앗아... -
평론 심사평 - 필자의 식견과 믿음을 보여준 인용시와 분석
21편의 응모작 중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어느 비평가의 변신’과 ‘모글리 신드롬-가능성이라 불리는 아이들’ 두 편이었다.‘어느 비평가의 변신’은 김소진·김경욱·박범신·박민규·황정은·김애란 등의 소설을 대상으로 읽고 쓰는 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독특한 글이었다. 비평에 대해 이 글의 필자가 제시하는 몇 개의 명제들이 있다. 비평적 읽기란 외상적 휴지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런 읽기란 본질적으로 두 번 읽기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 등이 그것이다. 이 글은 그러니까 어떤 작품이나 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것과 만나는 경험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셈인데, 그런 발상의 독특함이 개성적인 사유와 구성을 만들어냈다.‘모글리 신드롬’ 역시 발상이 신선한 글이었다. 이 글의 필자는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김기택·정재학·황병승·김행숙·박상수·김승일 등의 시를 뽑아내어 왜 우리 시대의 시 속에 아이들이 등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답은 물론 간명하다. 어린아... -
평론 당선소감 “이제부터 내 평론은 시인이 쓰는 또 다른 고백”
“변성기가 오지 않은 형은 싸가지가 없었다./ 엄마는 형이 없을 때만 형을 다루는 데 불편을 토했다. 나도 토했다. 눈물 나게 맞지 않으면 눈물을 만들려고 입에 손을 넣고 토했다.”(‘비굴과 굴비’ 부분)이 평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형들의 변성기를 묵묵히 들어야 했던 2000년대. 그때 나를 해방시키고, 또 구속시켰던 울퉁불퉁한 목소리들 때문에 나는 늘 나에게 앓아야 했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습작기와 내 마음대로 앓지도 못한 변성기 이후의 나의 시들에 대해서 부끄러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더 멋진 시인이 되고 싶었다. 틈틈이 내가 질투해온 동시대의 당신들을 독서를 하는 동안, 나를 더 소중하게 만들었던 시집 페이지 곳곳 그 밑줄들이 이 글을 쓰게 했을 것이다. 더 뜨겁고 솔직하게 내 시를 쓰기 위해서 그토록 아름다운 당신들을, 오늘 나는 나의 은인이라 부르고 싶다. 이제 내 문법을 마냥 읽어달라고 투정을 부... -
소설 부문 - 조영한 ‘무너진 식탁’
영목은 더부룩해진 배를 쓸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는 신트림을 내뱉으며 통증이 일어나는 옆구리를 손으로 짚었다. 그러나 요통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엉덩이까지 축 처진 배부른 가방을 멘 채 계단을 오르다가 결국 층계참에 신물을 툽, 하고 뱉어냈다. 층계참 바닥으로 누렇고 자그마한 얼룩이 파스텔처럼 번졌다. 그는 원망스런 눈초리로 얼룩을 쏘아보더니 다시 가방을 들썩이며 계단을 올랐다. 영목은 계단을 오르면서 점심 때 교내식당에서 먹었던 수수밥과 시금치된장국, 고등어조림과 계란찜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점심시간 때, 영목은 밥과 반찬들을 식판에 넉넉히 퍼 담고는 기울기가 비스듬한 식탁 위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가 수저를 가져오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식탁은 평형을 잃고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수저를 들고 온 영목은 식판과 국그릇이 엎어지고 밥과 반찬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입을 다물... -
소설 당선 소감 “고독한 사람들 제대로 그려내고 싶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키가 작고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수위 아저씨가 있었다. 학교에서 그의 존재감은 보잘것없는 편이었다. 그는 뒷문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내 또래들을 꾸짖지도 못했고 화단에 꽁초를 버리는 남선생들을 제지하지도 못했다.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나는 숙직실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수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숙직실에서 불어터진 라면을 먹고 있었다. 눈곱 낀 눈매, 피로에 찌든 얼굴, 우동처럼 부푼 라면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그가 식사를 하는 장면은 내 머릿속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수위가 밥을 먹는 장면을 몇 줄의 글로 옮겼다. 그것은 물론 짧은 스케치였을 뿐 소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외면과 내면을 제대로 그려내야 한다는 욕구가 내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평생토록 그 욕구를 껴안고 살고 싶다. 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도 많다. 먼저 ... -
소설 심사평 “폭력성에 노출된 현대인의 나약한 초상 구현”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모두 22편이었다. 예년에 비해 예심 통과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지닌 신인층이 두꺼워졌다는 방증이기도 해 넉넉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할 수 있었다. 22편의 예심 통과작을 한 번 걸러 최종에 오른 8편의 작품은 ‘무너진 식탁’ ‘자정의 질주’ ‘XOX939’ ‘인간의 행방’ ‘막차 2006’ ‘실(失)’ ‘자취의 정석’ ‘통증’이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사력이 약하다는 점에 심사위원은 동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작품을 추린 결과 최종심에 남은 두 작품은 ‘무너진 식탁’과 ‘자정의 질주’였다. 서사와 개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통증’ ‘실(失)’ ‘XOX939’ 같은 작품도 논의가 되었으나 주제를 구축함에 있어 결락 부분이나 결핍 부분이 심각해 좀 더 정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무너진 식탁’과 ‘자정의 질주’는 우리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 -
시 부문 - 이해존 ‘녹번동’
1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2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3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 -
시 당선소감 - “지치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사무실 마감 일 때문에 정신없을 때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버리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잊기 위해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때였습니다. 연말연시를 생략하고 2월의 어느 일상으로 앞질러가고 싶을 때였습니다. 믿기지 않아 당선 전화를 받고난 후, 누군가 잔인한 위로의 장난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확인 전화까지 해야 했습니다. 영화 <폴락>에서 피카소는 ‘질서’를, 폴락은 ‘무질서’를 화폭에 담아냅니다. 피카소는 성공을 거둘수록 행복해지지만, 폴락은 그 반대가 됩니다. 성공할수록 질서가 잡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겠습니다. 최종심에서의 수많은 고배가 모루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위로를 건네준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옆에 계신 것만으로도 가르침이 되어주시는, 언제나 현역이신 정진규 선생님 그리고 이승훈, 김소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분화구 절벽에 둥지를 틀어 날아오를 수밖에 없는... -
시 심사평 “시는 자신을 비워줄 때 조금씩 다가오는것”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기예를 넘어 정신의 한 경지를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다운 시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온힘을 다하여 시에 헌신하고 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비워줄 때 시는 온전한 모습으로 조금씩 다가온다. 시는 결코 설익은 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최종에 오른 네 편의 시 가운데 ‘그 여자의 거실에는 기차가 달려가지’ 외 4편을 응모한 서진배의 시는 발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산문적 진술에 기대고 있고 급격히 장면을 전치시키거나 전복시켜 시를 읽는 데 재미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했다. ‘침묵의 불법 점거에 대한 진술서’ 외 4편의 김희정의 시는 소음과 환청, 자본주의와 물신과 같은 도시적 생태를 다루고 있으면서 눅눅한 서정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시의 관절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점에서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