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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가을…다시 봄을 기다리며
가을이 유난히 뜨거웠다. 날은 제법 쌀쌀했지만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야구 때문이었을 것이다.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키움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는 놀라웠다. 강한 상대를 이기고, 예상을 깨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들은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다. 매 경기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치고 다쳐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던 그들을 보며 내 마음도 뜨거워졌다.한국시리즈에서 키움을 꺾고 우승한 SSG 선수들에게 축하를 전한다. 시리즈 5차전에서 나온 김강민의 끝내기 홈런을 보고 나 역시 전율을 느꼈다. 명승부를 만들어준 두 팀 선수들과 김원형 SSG 감독, 홍원기 키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최근 몇 년 동안 KBO리그는 조금 힘이 빠져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중석을 비운 채 2년을 보낸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져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야구장 밖에서는 여러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야구 팬으로서 나도 걱정이 많았다.... -
한계를 뛰어넘는 힘 ‘간절함’
지난주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아래 사진)가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오클랜드전에서 규정 이닝(162이닝)을 채웠다. ‘투수 오타니’는 올 시즌 28경기에 선발 등판, 166이닝을 던지며 15승9패 평균자책 2.33에 탈삼진 219개를 기록했다.‘타자 오타니’는 어떤가. 157경기 662타석에서 160안타를 치며 타율 0.273 34홈런 95타점을 기록했다. 특출한 투수와 타자 두 명이 각자 만들기도 어려운 기록을 혼자 해냈다. 147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혼자서 규정 이닝·타석을 동시에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오타니는 아메리칸리그 한 시즌 홈런 신기록(62개)을 세운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와 최우수선수(MVP)를 놓고 경쟁한다.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의 상징성이 워낙 크다. 게다가 저지는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에서도 앞선다.그래도 오타니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의 크고... -
누구나 도전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의 시간’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의 은퇴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2017년 이승엽에 이어 KBO리그의 두 번째 은퇴 투어 주인공이 됐다. 야구인으로서 고맙고 존경스러운 일이다.야구와 마찬가지로 은퇴 투어 역시 미국에서 시작됐다. 은퇴 투어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오래 기념할 만한 선수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존경하고, 다 함께 이별하기 위한 시간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201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강타자 치퍼 존스가 은퇴하게 됐을 때, 소속 팀 아닌 다른 팀에서 은퇴 기념 선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차츰 발전해 아름다운 이벤트가 되었다. 어느새 메이저리그의 한 문화가 되는 중이다.2013년에는 뉴욕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 투어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652개)를 기록한 리베라의 은퇴 투어 또한 특별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부러진 방망이들을 모아 흔들의자를 만들어 선물했다. 의자에는 ‘부러진 꿈들’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야구를 사... -
유도엔 ‘낙법’이 있는데…‘패자부활전’ 없는 야구를 돌아보자
얼마 전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두세 타석 안타를 치지 못하는 타자를 교체하고, 서너 경기에서 부진한 투수를 2군에 보낸다. 단기간 결과에 따라 선수의 가치,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압박을 받으며 야구 해왔다는 것을 몰랐다. 실패를 인생의 끝이라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선수들의 틀을 깨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상적이었다. 수베로 감독은 지난해 초 부임하면서 실패할 자유(freedom to fail)를 강조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연구하고, 다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했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지시하는 등 과감한 플레이를 주문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단기전’을 치르는 데 익숙하다. 감독이 아무리 괜찮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은 습관처럼, 한두 번의 실패에 바로 고개를 숙인다.2022년 프로야구가... -
맨유의 예외 없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프로야구에 적용하면 어떨까
2004년 11월, 삼성 라이온즈 12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2005년 1월 괌으로 떠난 전지훈련, 정식 훈련이 시작되기 전날 밤 팀 미팅을 열고 ‘감독으로서 당부사항 7계명’을 공지했다. “프로 선수로서 ‘몸가짐과 행동’이 좋은 팀 분위기를 만든다. 좋은 분위기에서 운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선수 본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날 밤의 첫번째 계명이다. 당시만 해도 이 정도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선수단 모두가 이해했고 서로 동의하며 양해가 이루어졌다.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2022년의 프로야구는 어떨까. 여전히 나는 야구에 대해 ‘학생’이다. 요즘도 KBO리그를 보며 많이 깨닫고 배운다. 최근 트렌드인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배우지만, ‘학생’으로서 배워야 할 교과서는 비단 그 영역이 야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에릭 텐하흐 신임 감독이 얼마 전 이번 시즌 선수들이 지켜야 할... -
수업일수만 채우게 하면 ‘책임 끝’인가
최근 트래킹 데이터(투구·타구의 움직임을 추적한 기록)를 공부하면서 첨단 장비를 활용해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프로야구단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고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사설 학원인 ‘야구 아카데미’가 비싼 장비를 구입해 활용하는 모습은 꽤 놀라웠다.야구 아카데미는 주로 프로에서 은퇴한 유명 선수들이 운영하며 고가의 장비를 갖추고 학생 선수들의 투구와 타구를 분석한다. 일대일 맞춤 교육이다. 방과후나 주말 과외를 받는 중·고교생이 주요 고객이다.학생 선수와 학부모 입장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통한 과외는 소비자로서 선택권을 행사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형태의 아카데미들이 운영돼왔다. 트레버 바워, 클레이턴 커쇼 등 최고 메이저리거들도 사설 기관에서 자신의 피칭 데이터를 보고 폼을 수정한다.학교를 공교육, 아카데미를 사교육으로 본다면 둘의 공존은 자연스럽다. 우열을 가리지 말고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한다면 나... -
매일 이길 순 없지만 매일 잘하자…팬들에게
참 뜨거운 여름이다. 덥고 습한 7월, 모처럼, 두 번이나 잠실야구장에 갔다.지난 12일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초청을 받아 LG-KIA전을 봤다.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회장님과 나란히 앉았다.야구인생의 대부분을 마운드나 더그아웃에서 보냈다. 관중석에서 야구를 본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모른다. 투수들의 피칭과 타자들의 타격을 관중석에서 내려다보는 것은 색다른 공부이자 기쁨이었다. 더 새로운 것은 팬들과 함께였다는 점이다. 사인 요청에 응하며 나도 즐거웠다.지금의 나는 그저 야구 팬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팬들에게 나는 그들과 같은 팬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선동열 선수’ 혹은 ‘선동열 감독’일 것이다. 내가 한 사인 하나로 그들은 또 추억 하나를 예쁜 액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참 뜨거운 함성이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알던 소리가 아니었다.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
‘구도 부산’에 야구 영웅 이름을 딴 경기장이 있었으면
1987년 5월16일 부산 사직야구장, 나중에 영화 의 소재가 된 바로 그 경기가 열렸다. 선발 투수는 최동원 선배와 나. 이 대결은 연장 15회 끝에 2-2 무승부로 끝이 났다. 최 선배는 209구, 나는 232구를 던졌다.다음날 오후 사직구장에서 최 선배를 만났다. “형, 대단했어요.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일 16회, 17회까지 넘어가는 경기였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야, 계속던져야지.”최 선배는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오늘 뭐하냐? 나랑 밥이나 먹자”고 했다.보통 사람의 시각으로는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승부의 응어리가 남은 채, 그 경기의 상대와 바로 다음날 사적으로 만나 밥을 먹는 게 쉽지 않을지 모른다.하지만 최 선배는 달랐다. 그날 밤, 최 선배의 단골 식당에서 단둘이 만났다. 반주로 술 몇 잔을 나누며 어제 경기를 안주 삼았다. “동열아, 몸 관리 잘해라. 투수는 피로가 쌓이다 보... -
농아 선수들의 파이팅이 주는 깨우침…자신의 재능과 기회를 허비하지 말라
지난 1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제13회 선동열배 OK 전국농아인야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이날 결승전에서 고양 엔젤스가 안산 윌로우즈를 이겨 우승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열리지 못했던 대회가 성료돼 대회장으로서 참 감사하고 뿌듯하다.‘천일 동안 참았던 소리 없는 파이팅’이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대회였다. 선수들은 소리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지만 나름의 언어로 소통했다. 그들의 언어는 열정 그리고 질서다.농아(청각·언어장애인) 선수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한정돼 있다. 그래도 야구를 하겠다는 열정은 감동적일 만큼 대단하다. 10년 넘게 이 대회를 운영하면서도 볼 때마다 가슴이 새삼 뜨거워진다.그들의 플레이에는 질서가 있다. 즉각적이고 정확한 소통이 어려운 대신 그들은 동료와 상대를 더 배려한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농아 선수들에게는 프로야구가 열리는 구장에 섰다는 것 자체가 승리다. 가족과 팬, 후원사와 취재진 앞에서... -
‘나 ML 출신’ 자존심만 앞세우면 ‘독’…열린 자세로 배우고 팀에 녹아들어야
나도 한때는 ‘용병’이었다. 1996년부터 네 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드래곤스의 용병이었다. 2005년부터는 KBO리그에서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용병을 스카우트하고 기용하는 일을 하게 됐다. 오늘은 ‘용병’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선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1996년 일본 진출 첫해, 내가 부진에 빠지자 일본 야구 전문지 ‘주간베이스볼’이 분석에 나섰다. “컬처 쇼크라고 하는 두꺼운 벽에 막혀 발버둥 치면서 힘들어 하는 한국의 국보. 가슴 앞에서 모아 몸으로부터 글러브를 떨어뜨린 채 들어가는 세트 포지션이 문제다. 쿠세(투구 습관)가 읽혀 던지는 구질이 드러난다.”슬라이드 스텝도 문제였다. 이렇게 문제가 드러날 정도였다면 새롭게 일본 야구를 이해하고 배우겠다는 자세로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자존심이 앞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함께 고쳐 나가자는 코칭 스태프의 제안이 있었지만 자꾸 다른 감정이 앞섰다. 결국 엄청난 좌절 속에 시즌을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