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오타니와 ‘꿈의 크기’
지난주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아래 사진)가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오클랜드전에서 규정 이닝(162이닝)을 채웠다. ‘투수 오타니’는 올 시즌 28경기에 선발 등판, 166이닝을 던지며 15승9패 평균자책 2.33에 탈삼진 219개를 기록했다.
‘타자 오타니’는 어떤가. 157경기 662타석에서 160안타를 치며 타율 0.273 34홈런 95타점을 기록했다. 특출한 투수와 타자 두 명이 각자 만들기도 어려운 기록을 혼자 해냈다. 147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혼자서 규정 이닝·타석을 동시에 달성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오타니는 아메리칸리그 한 시즌 홈런 신기록(62개)을 세운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와 최우수선수(MVP)를 놓고 경쟁한다.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의 상징성이 워낙 크다. 게다가 저지는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 세이버메트릭스 지표에서도 앞선다.
그래도 오타니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의 크고 간절한 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9개의 포지션과 9개의 타순으로 나뉜 야구에서 오타니는 9분의 1 그 이상을 해내고 싶어 했다.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달리고 싶은 야구 선수의 기본을 더 잘해내고 싶어 했다. 누구나 꿈꿨지만,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이상을 향해 오타니는 계속 달리고 있다.
나도 젊은 시절 메이저리거를 꿈꿨다. 1985년 KBO리그 대신 미국에 가려 했지만, 시대가 날 막아섰다. 1996년 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4년 뒤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하려다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훗날 박찬호·류현진 등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아쉬운 감정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꿈이 더 컸다면, 내 의지가 더 간절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얼마 전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보았다. 이 총장은 “카이스트 학생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학생을 비교했을 때 열정과 실력은 대등하다. 하지만 꿈의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더 많다. 학생들의 꿈도 함께 커질 것이다.
이제 지구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그만큼 우리의 무대가 커졌다. K팝, K무비, K드라마의 세계적인 성공을 수없이 봐왔다. 한국에서 만든 한국인의 콘텐츠는 이미 세계 최고가 됐다. 손흥민·김민재 등 축구 선수들은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수영 황선우, 육상 우상혁 등 기초종목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오타니는 뛰어난 신체와 재능을 갖췄다.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도전이 벽에 부딪혀도 오타니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허황돼 보였던 꿈이 지금의 오타니를 만들었다. 덕분에 우리도 꿈같은 야구를 매일 보고 있다.
꿈을 다 이루지 못한 선배로서, 젊은 후배들을 응원하고 싶다. 더 큰 꿈을 꾸라고 말이다.
한계라는 것은 남들이 나의 재능만 보고 설정한 ‘짐작’일 뿐이다. 그것을 뛰어넘을 추동력은 꿈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을까. 설령 꿈을 다 이루지 못하면 어떤가. 달을 향해 쏴라, 빗나가도 별들 사이에 있을 테니(레스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