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도전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의 시간’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⑫ 이대호 ‘은퇴 투어’를 보며

[선동열의 야구, 이야기] 누구나 도전하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의 시간’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의 은퇴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2017년 이승엽에 이어 KBO리그의 두 번째 은퇴 투어 주인공이 됐다. 야구인으로서 고맙고 존경스러운 일이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은퇴 투어 역시 미국에서 시작됐다. 은퇴 투어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오래 기념할 만한 선수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존경하고, 다 함께 이별하기 위한 시간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2012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강타자 치퍼 존스가 은퇴하게 됐을 때, 소속 팀 아닌 다른 팀에서 은퇴 기념 선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차츰 발전해 아름다운 이벤트가 되었다. 어느새 메이저리그의 한 문화가 되는 중이다.

2013년에는 뉴욕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 투어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652개)를 기록한 리베라의 은퇴 투어 또한 특별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부러진 방망이들을 모아 흔들의자를 만들어 선물했다. 의자에는 ‘부러진 꿈들’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가 얼마나 살갑게, 때로는 즐거운 웃음으로 다가올 만한 선물인가. 글을 쓰는 지금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과거와 현재의 홈구장에서 쓰던 흙을 담아 선물했다. 어쩌면 앞으로 리베라는 각 구장의 그 흙냄새가 그리울 것이기에.

은퇴 투어는, 누군가는 기억을 담고 누군가는 웃음을 담아 함께 기뻐하고 함께 기록하는 하나의 문화이자 역사가 되어간다. 그런 문화가 이제 KBO리그에도 도입되고 차츰 진화되어 가는 중이다.

은퇴 투어는 꼭 야구장에서만, 야구인들끼리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역사가 각기 다른 관점과 사관에 의해 쓰이듯 야구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존경한다.

다시 소환할 만한 은퇴 투어가 있다.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치로는 전격 은퇴를 선언한 이튿날, 2019년 3월22일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을 통해 미국 시애틀로 출국했다. 탑승 게이트 넘버는 51번이었다. 원래 나리타 공항의 시애틀행 비행기는 ‘58B 게이트’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만은 ‘51 게이트’로 변경했다. 일본 항공사 전일본공수(ANA)의 특별한 존경심이었다. ANA 관계자는 “운영에 큰 지장이 없기에 이치로의 그간 활약에 경의를 표하고자 그의 등번호에 맞춰 탑승 게이트를 51번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이것이 스타플레이어를 대하는 미국 그리고 일본의 자세다.

그렇다면 야구인으로서, 야구를 하는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뭔데 이렇게 은퇴를 기념하는 행사를 선물받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이런 행사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이 있을까? 받아도 마땅한가?’

은퇴 3년 뒤인 지난 8월, 시애틀에서의 활약과 공로를 인정받아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치로가 연설을 했다. “일본에서 온 깡마르고 체격도 작은 남자가 유니폼을 입고 경쟁했다. 그리고 이 영광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이다. 은퇴식조차 없던 시절이 있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선후배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제 누군가는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다. 물론 역사나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마땅히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야구인이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는 이토록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마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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