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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자율 억압하는 학칙
학교의 규칙은 ‘금지’투성이다. 교장의 허락 없이는 어떤 외부활동도 할 수 없고, 학생회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복장 규정은 세밀화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지만, 선도 규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모호하기 그지없다. 서울 ㄷ중학교 학칙을 중심으로 중·고교의 학칙을 분석해봤다.◇ 학생회 규정 = 이 학교 학칙에 포함된 학생회 규정 1장 5조에는 ‘금지활동’ 항목이 명문화돼 있다.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학교장의 행정사항에 간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학교장의 행정사항’이라는 것은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에 학생회 활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학교의 운영·교육방침에 대한 의견 제시 등을 막아버린 셈이다.학교가 학생회에 바라는 기능은 ‘심부름꾼’ 수준이다. 7조 학생회의 기능 규정에 따르면, 학생회의 역할은 각종 봉사활동,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제반 활동, 취미 신장에 ... -
‘이름뿐인 학생회’… 학교 사사건건 개입해 무력화
최근 인천의 한 고교에서는 학교 내 일부 동아리가 말없이 사라졌다. 학생회장 ㅈ군에 따르면 이 학교는 최근 인천시교육청이 지정한 ‘10대 명문고’로 선정되면서 “학업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래패나 춤 동아리를 해산하는가 하면, “축제를 미루겠다”고 일방적으로 학생회에 통보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회 활동 모범학교로 자주 인용됐던 서울 A여고도 지금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학교 학생회는 당시만 하더라도 매년 1800만원의 예산을 직접 집행하고, 스스로 축제와 체육대회, 4·19 행사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흘러간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학교 측은 각종 행정적 이유로 학생회의 예산권을 거둬갔다. 지난 2월 이 학교를 졸업한 홍모양(19)은 “밤늦게까지 남아 축제를 준비하려 하면 부모님들의 항의전화가 학교로 걸려왔다”면서 “학생회 활동에 시간을 뺏기면 입시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 심적 갈등이 컸다”고 했다. 비민주적... -
공부 잘하던 그 아이가 왜… 목포서 고교생 분신 시도
학생 인권을 신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 고교생이 길거리에서 분신자살을 시도, 중태에 빠졌다. 이 학생은 반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우등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전남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6일 오후 7시10분쯤 전남 목포 용해동 골목길에서 임모군(17·고교 2년)이 갑자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길 가던 주민들이 달려가 불을 껐으나 순식간에 임군의 윗옷이 모두 타는 등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는 출동한 119구조대 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뒤 대전으로 긴급 이송해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독한 상태다.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임군은 이날 외출을 나왔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책가방과 불을 붙이는 데 사용한 라이터를 수거했다. 경찰은 임군의 몸에서 진한 시너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했으나, 시너를 담은 통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 이미 몸 깊숙이 시너를 뿌린 후 길을 걷다가 불을 붙인 ... -
(下)인권 없는 아이들의 미래
7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조례제정본부)에 폭력적 체벌 사건이 접수됐다. 서울의 모 중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중 떠들었다는 이유로 학생 3명을 복도로 데리고 나가 빗자루 3개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체벌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으로 학생을 통제하려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체벌을 비롯한 학교의 비인권적 문제들이 수십년간 계속된 뒤편에는 학부모-학교-사회의 암묵적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한다. 의 저자 김민아씨는 “‘학교는 원래 그래도 되는 공간’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런 생각은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아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지난해 ‘사랑의 떡메’ 체벌로 물의를 빚은 경기 수원 ㅅ고가 단적인 예다. 이 학교는 수십년간 경악할 만한 ‘전통’을 자랑해왔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일부 학부모들이 길이 1m, 넓이 10㎝, 두께 1㎝가량의 떡... -
외국 사례·대안
주요 국가에서는 헌장 및 조례 등을 통해 학생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 자치를 장려하고 있다.대표적으로 미국 뉴욕시의 경우 ‘학생의 권리와 의무 헌장’을 만들었다. 뉴욕시 교육국은 “모든 학생이 의견을 표현하고 특정 주장을 지지하며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 집회를 열고 자신의 의견을 옹호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책임있게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고 명시해 놓았다. 또 학생들은 “체벌을 받지 않을 권리”와 “징계 규정 및 학교규칙과 규정을 제공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했다.일본은 1990년대 후반 학교 내 ‘이지메(집단따돌림)’ 문제와 등교 거부가 논란이 되면서 학생들의 인권과 행복권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이에 가와사키시는 ‘아동 권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2000년부터 이를 시행했다. 이 조례는 “아동은 학대·체벌을 받지 않을 권리와 집단따돌림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아동은 개성 및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 -
‘바리깡’은 살아있다
25년 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소녀는 유서에 “난 내 동생들을 방황에서 꺼내줘야 해. 나의 죽음이 남에게 슬픔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라고 적었다. 자신의 죽음이 사회에 경종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소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대한민국 학교는 변한 게 없다. 경향신문이 서울지역 초·중·고교 4개 학급에 ‘학교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돌린 설문지에는 25년 전 아이들의 고민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학교는 우리에게 등급을 매긴다. 그렇지만 우리는 쇠고기가 아니다.” “누구나 공부 잘하고 싶지, 못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우리랑 역할 바꿔볼래? 우리가 얼마나 괴로운지….” “만날 말로만 성적으로 차별 안 한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뻔한 거짓말.” “학원 반대! 학원을 다녀도 성적은 그대로. 토요일... -
(上) ‘차별’을 배우는 아이들
학교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성적에 따라 접근이 허락되는 학교 시설이 다르고, 성적에 따라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질도 달라진다. 학생들 사이에서 “전교 몇 등까지는 ‘귀족’, 나머지는 ‘평민’이거나 ‘들러리’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경기도의 비평준화 지역에서 명문고로 꼽히는 ㅇ고교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학생을 철저히 성적에 따라 선발한다. 비평준화 지역 학교인 만큼 다른 시·군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집이 먼 학생들을 배려하는 부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모의고사 언어·수학·외국어 성적 60%와 기말고사 국·영·수 성적 40%를 반영해 기숙사생을 선발하는데 원거리 가산점은 2%에 불과하다. 이 학교 김모군(17)은 “집이 멀어 기숙사에 꼭 들어가야 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점수가 모자라 기숙사 입실에 실패했다”고 전했다.부천의 ㄱ여고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기숙사는 원거리 학생들을... -
“우리는 공부기계… 아플 수도 없어요”
올해 인천 ㄷ고교에 진학한 이모양(16)은 지난해 중학교에 다닐 때 소화불량이 생겨 계속 고생하고 있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등을 앞두고 점심시간에도 자율학습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양은 식사를 대충 하고 교실로 돌아와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이양은 “점심시간만이라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학교에선 허락하지 않았다”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해서 그런지,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되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경북 포항 ㄷ고 2학년 유모군(17)은 지난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에 나가야 했다. 방학에는 오전 6시까지 나와 교과 진도를 나가고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자율학습을 했다. 몸이 약한 유군은 주말에는 집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학교 측은 “동의서를 냈기 때문에 학교에 나와야 한다”며 막무가내였다. 수업에 빠질 경우 벌금까지 내야 했다. 학생들에게 예외 없이 강요되는 입시몰입 교육으로 청소년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하루... -
(上) 변하지 않는 학교
공부, 공부, 그리고 또 공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건 공부뿐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나도 겪어봤다”고. 과연 그런가. 행복은 성적 순일까. 머리가 길면 공부를 못할까. 공부 못하는 학생은 차별을 받아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학생은 1분, 1초도 방심할 수 없다. 학교 측의 배려는 인색하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권리는 미약하기 때문이다.등굣길에 오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드러내야 한다. 교복 상의 가슴 부분에 박음질한 이름표 때문이다. 서울 ㅁ중학교 김모군(14)은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에게나 내 이름을 알도록 하는 게 조금 무섭다”고 했다. 명찰 박음질은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생활의 자유 제한과 범죄 노출 우려’를 이유로 시정을 권고한 사항이다... -
‘차별’ 왜 심해지나
학교나 교사의 학생 차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늘 고달팠다. 하지만 학교별 성적 공개로 학교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우열반 편성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차별은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2008년 도입된 학교정보 공시제도로 지난해부터 전국의 학교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성적과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을 공개하게 됐다. 전국 학교가 성적을 기준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서게 된 것이다. 교육 수요자들은 ‘공부 잘하는 학교’와 ‘못하는 학교’를 구분해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도 야간 자율학습과 정규수업 전 0교시 수업, 문제풀이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교육당국이 ‘수준별 이동수업 내실화’를 강조하며 우열반 편성을 장려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동훈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수준별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